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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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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요리가 국내에 막 소개되어 들어왔을 때쯤 용기 내어 베트남 요리를 먹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시내에 위치한 한 베트남 요리 전문 레스토랑을 찾아갔습니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나름 갖출 건 다 갖춘 듯한 모양의 식당이라 종업원들 모두가 베트남 민속의상을 착용하고 꼬부랑 베트남어로 되어 있는 메뉴판을 건네며 샬라샬라 베트남어로 주문받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러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었습니다. 흐릿한 지금의 기억으론 메뉴판을 보고 어떤 세트 메뉴를 주문한 듯한데, 얄라뽕따이… 같은 느낌의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베트남 요리 먹기에 성공한, 매우 거룩하고 역사적인 날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웬만하면 베트남 요리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문제, 어떤 프라블럼 때문에 그런 것일까. 베트남 쌀국수… 그러니까 영어로 하면, B SS……, 어쨌든 보기만 해도 무서운 트라우마가 생겨버렸으니, 아무튼 바꿔! 줬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요리들과 맛이 조금 달랐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원래 베트남 쌀국수가 다른 음식들과 맛이 다르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는데, 이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원래 웰빙을 추구한 음식들이 다 그런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한 젓가락 후루룩 먹고 나니 남아있는 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양이 적어서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라곤 차마 말하지 못하겠고, 아무튼 바꿔! 주세요!
하시모토 쓰무구의 소설 《오늘의 요리》는 음식과 관련된 짧은 글 23편을 모은 단편집입니다. 일본에선 음식을 소재로 한 글이 참으로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쪽 장르의 글에 대한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오가와 이토,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유명 작가들이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에서도 자주 음식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랄까, 따뜻한 기운이랄까, 그래서 얻는 안도감, 혹은 포만감이랄까, 아무튼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이로운 특성상 음식에 대한 글은 주로 갈등을 해결하고 치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요리》는 어떤 목적을 가진 글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음식, 유별난 요리법을 적용한 음식, 그래서 고유의 의미를 가진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엔 그것이 글이 되었을 때 비로소 주제의 향이 느껴지고, 의미의 맛을 곱씹기 위해 천천히 씹게 되며, 그것을 소화시켜 몸에 좋은 감정과 교훈의 영양소로 분해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이 소설에선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손맛, 그러니까 정성… 정성이 부족한 느낌인데, 정말로 맛이 없다고 정색하며 말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정성이었냐면, 그렇다고도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느낌이라, 사실은 이런 맛의 소설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참으로 아리송합니다.
건조한 맛의 글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가 문득 오래전에 맛보았던 베트남 쌀국수가 생각난 것입니다. 너무나도 웰빙을 추구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저자극을 향신료를 이용한 요리법 때문인지 미각과 후각에 아무런 감각이 전해지지 않을 요리가 완성되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글의 양이 적었던 것도 문제가 됩니다. 이런 느낌을 일본 특유의 어떤 정갈한 느낌이라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츤츤’한 대화가 오고간 듯해 보입니다. ‘츤데레’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선 뒤에 어떤 개연성을 보인 마무리와 함께 ‘데레데레’한 느낌이 따라붙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기호와 입맛이 똑같을 순 없으니, 소설집 《오늘의 요리》는 아마도 누군가에겐 훌륭한 오늘의 요리가 될 것이라 봅니다. 물론 영양소 가득한 웰빙의 느낌으로.
마사토는 자신의 생각에 힘을 보태기 위해 굳이 큰 소리를 내며 컵을 내려놓았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번호를 눌렀다. 시바모토 아카네라는 글씨가 조그만 화면에 떴다. 그래도 얼마쯤 더 망설이던 끝에 마사토는 발신 버튼을 눌렀다. 호출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아아, 긴장되네……. 세 번, 네 번……. 차라리 부재중전화로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받았주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어느 쪽이 진짜 기분인지 모르겠다. (볶은 콩, 42쪽)
그 고독 속에서 카즈토시는 한 편의 단편을 썼다. 문장은 최악이었고, 구성은 엉망이었다.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만 뭔가를 얻었다는 감각은 있었다. 음악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장은 계속 쓰면 좋아진다. 구성은 잘 수습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다. 무엇인가만은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벚꽃놀이 도시락, 79쪽)
교코도 나름대로 성인이다.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왔다. 이 시간에 남성이 유혹하는 의미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교코는 끄덕이고 있었다. 그냥 몸을 맡겨버렸다. 스미다 씨가 주문한 것은 최고급의 샴페인이었다. (샴페인, 285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