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의 나비
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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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런 소설은 처음 봅니다. 아니, 예전에 이와 비슷한 모양을 한 소설을 몇 편 읽었던 적이 있지만 이만큼 진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설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인지 아닌지, 진짜인지 아닌지 여전히 추측뿐인 말입니다.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괜찮은 소설이길래 이토록 애매모호한 표현을 써가며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솔직히 괜찮은 소설은 아닙니다. 아니 그러니까, 괜찮은지 아닌지 그걸 정확히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 소설을 풀어낼 열쇠를 아직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보물 상자는 겉모양만 봐도 그 안에 어떤 어마어마한 보물이 담고 있을까 감이 옵니다. 굳이 열어보지 않더라도 지레 짐작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쾨쾨한 냄새, 잔뜩 낀 이끼. 육중하고 단단한 모양을 한 경첩. 굉장히 정교해 보이는 열쇠 구멍.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절대 열리지 않으며 굳게 입을 닫아 안에 담긴 무언가를 지키는 보물 상자. 결국 그 상자를 열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열쇠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열쇠를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엔조 도의 소설집 《어릿광대의 나비》는 「어릿광대의 나비」와 「마쓰노에의 기록」이라는 기묘한 소설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어릿광대의 나비》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그리고 그 암호 해독법이 소설 속 이야기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그것을 풀이해낸 건 아닙니다. 문장의 첫 단어들을 모아서 하나의 문장으로 나열해 보니 결국 답이 되었다, 하는 식의 단순한 암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글로 쓰인 쿤데라의 소설을 읽습니다. 프랑스어 소설의 번역본을 읽는 것입니다. 하지만 쿤데라가 처음 썼던 소설은 체코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양의 소설은 일본을 통해 번역의 번역을 거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언어, 완전히 다른 기원을 갖는 언어들을 사용하여 여러 번의 번역 작업을 거치다보면 간혹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언어에는 특정 단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무의미한 의미들이 사라진 하나의 문장으로……. 그것은 마치 큰 돌 덩어리 같아 보이는 글이 무수히 많은 번역을 통해 다듬어져 원석의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깎이다가 마침내 고유의 색을 띠고 빛을 내며 살아남은 단 한 줄의 문장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바로 이 소설을 열 수 있는 열쇠이자 보석입니다.

 

 

    그렇다고 그 열쇠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릿광대의 나비》를 읽다보면 평소에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머릿속 어딘가가 개방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머릿속 어딘가에 오랜만에 드리워진 따뜻한 빛에 잠깐 동안 눈부심을 느끼고 약간의 적응 시간을 가진 후 입을 오므려 그동안 쌓여 있었던 먼지를 조금씩 후후 불어내고 간질이며 자극하는 말랑말랑한 느낌…, 책을 읽는 행위가 이토록 신비로운 경험인지 그동안은 미처 몰랐습니다. 줄거리 요약, 함축적 의미해석, 공감대 형성 등과 전혀 무관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기쁨… 이런 느낌이 혹시 미래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란 것일까요.

 

 

    《어릿광대의 나비》는 분명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느낌의 공상을 그린 소설이지만, 이를 부정하는 요소도 많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물 상자 속에 든 보물의 진위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상자 속에 든 보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소설을 읽는 동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기분에 휩싸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물 상자에 맞는 열쇠를 만들기 위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신비로운 감각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소설의 표면적 의미를 쫓기 위해 어릿광대처럼 포충망을 휘두르며 착상의 나비를 잡으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팔이 셋 달린 사람이 수예로 정교하게 짠 이 소설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남긴 문장에서는 격조도 어조도 마구잡이로 섞인 잡다한 웅성거림으로 시작해, 서서히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되어 가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처음에는 그저 연쇄된 소리를 들리는 대로 옮긴 것으로 보이던 것이 맞춤법이 애매한 문장으로 자라나서, 서서히 비유 표현을 갖추고 오탈자를 줄여 문장의 모습을 이루어 가는 모습은 이상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다. (어릿광대의 나비, 36쪽)

 

 

    말을 배우는 과정이 수예의 진보와 함께 이루어지는 이상, 내 어휘는 수예 용어와 요리 용어를 중심으로 한다. 거기서부터 부족한 게 더해져서 내 말은 짜이고 익는다. 요리 책을 쓰겠다고 나설 만큼은 미각이 발달하지 않았다. (어릿광대의 나비, 54쪽)

 

 

    그렇게 해서 나는 떠올린다. 내가 잊는 것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 담기는 장소의 주소이다. (어릿광대의 나비, 56쪽)

 

 

    그 나날에는 서로가 서로의 도구에 가까웠다는 기분이 희미하게나마 든다. 인간이 아닌 도구라고 한다면 언제든 누군가에게 수집되어, 혹은 스스로의 의사로 언젠가는 이곳에 오게 될 것이다. 그게 대체 누구였는지 나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 하겠지만. 아마 얼굴을 봐도 모르겠지. 실제로 대면해도서도 모를 것이다.

    되풀이되는 이름은 호소다.

    같은 일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줄곧 다른 일이 일어나면서, 내 손을 거친 것들에, 내가 아닌 것들이 섞여 들어온다. (어릿광대의 나비, 84쪽)

 

 

    다시 말해 닮았다는 뜻이다. 남들과 다른 방식이 닮았다는 뜻. 왠지 우울해졌다. 고독이라는 개념은 개념으로 존재한 시점에서 고독과 멀어지고 만다. (마쓰노에의 기록, 107쪽)

 

 

    이야기의 내용은 그 정도이지만, 그렇게 된 것은 마쓰노에의 번역 때문이었다. 마쓰노에는 얼굴 가죽을 쭉쭉 벗긴다는 게 오죽 마음에 들었는지 묘사를 대폭적으로 늘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결말을 삭제해서 계속 가죽만 쭉쭉 벗기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나로서도 역시 그건 좀 그렇다 싶었는데, 읽다 보니 줄거리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계속 가죽만 쭉쭉 벗기는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지면서 이대로도 괜찮겠다는 기분이 되었다. (마쓰노에의 기록, 144쪽)

 

 

    당신들은 진실만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진실만을 쓰는 게 아닌데, 진실조차 다 쓰지 못하죠. (마쓰노에의 기록, 146쪽)

 

 

    생각은 해도 뭘 하면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바뀐 것은 내 인식이지 이 세상이 아니니까 말이야. 실제로 내가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은 무엇 하나 변한 게 없어. 앞으로 변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내가 쓰는 내용은 변해 가겠지. 하지만 글자가 변하는 건 아니야. 변함없이 괴상한 이야기를 쓰게 될 뿐이야. 거기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어. 자네 역시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나는 나의 바람을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이해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어. (마쓰노에의 기록, 16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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