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33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시바 료타로의 소설 『패왕의 가문』을 읽고, 혹시 이 시대가 그 시대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려고 『배가본드』를 꺼냈다가 결국 또다시 처음부터 다 읽어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소설과 완전히 같은 시절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고, 유명한 검객들 이름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기도 해서 오호라 그놈이 그놈이구나 하며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시 꺼내든 만화책을 통해 이전에 읽었던 소설의 내용이 내 안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느낌… 이야기가 보인 세상이 명확해지는 느낌… 어떤 경지에 이르는… 오호라! 이런 세상도 있구나! 라며.

 

 

 

    『배가본드』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 일본에 실존했던 두 검객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입니다. 15년 전에 단행본 1권이 나온 듯한데, 현재 33권까지 나온 상태니 일 년에 두 번의 단행본이 나왔던 것이군요. 아무튼 굉장히 느릿느릿하게 나오고 있고 이야기 진행 자체도 굉장히 느릿느릿해서 다음 단행본이 나오길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 재빨리 찾아보기 보단 느긋하게 잊고 지내다가 생각나면 한 번씩 들춰보는 재미로 찾아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느리게 나오다가 갑자기, 예선전에서 하얗게 불태우다 보니 본선에 오르자마자 지쳐서 이렇게 갑작스레 완결하기로 하였습니다, 스미마셍, 하며 끝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타고난 천재와 만들어진 천재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슬램덩크』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의 그림은 엄청나게 형편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그가 보인 그림은 만화라고만 여기기엔 아까울 정도로 어떤 경지에 이른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여건을 갖춘 작가가 된다는 것. 그래서 비로소 만들어진 천재가 된다는 것. 세상에는 여유가 없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재적인 붓과 펜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붓과 펜 모두가 빛을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던 길을 계속 갈 기회를 얻는 천재는 많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결국 우리는 결과를 두고 이야기할 뿐이지만, 역시 힘들고 대단한 것은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그 길을 가다가 지치고 말라서 죽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름없는 천재들을 생각하니 괜히 온몸이 떨려옵니다.

 

 


    물론 누구나 여건이 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자질과 충분한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기회가 왔을 때 낚아 챌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천천히 성장하며 다듬어지고, 세상과 뜻이 만나 태어진 천재 검객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체격 조건이나 완력, 타고난 고집, 행운 등 세상이 허락한 외적인 조건들이 잘 들어맞아야 할 테니까요.

 

 

 

    『배가본드』 역시 1권에서 보인 그림과 33권에서 보인 그림의 수준 차이가 느껴집니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그림, 진화하는 모습, 더 대단한 작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그건 『배가본드』에서 미야모토 무사시가 천하제일의 검이 누구인지, 과연 스스로를 천하제일이라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거친 방식대로 검을 휘두르며 세상에 소리쳐 묻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천하제일이라는 집착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성찰을 통해 해소하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얻은 자기 안에 지혜가 차근차근 쌓이다가 결국엔 하나의 뜻, 진리의 경지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배가본드』는 사람을 베고 자르는 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세상 사는 일이 손에 쥐고 있는 도구만 다를 뿐 비슷한 모양새라 할 수 있으니,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뜻으로 통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검이 아니라 붓으로 천하제일이 되겠다는 뜻을 품었을지 모릅니다. 고집과 근성, 체력을 내세운 강백호나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캐릭터가 작가 자신의 모습을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천하제일을 꿈꾸던 패기 넘치는 소년이 진정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달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누가 되었든 천하제일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

 

 

 

 


 

 

 

    내 안에는 온갖 소리가 있다. 뼈가 부딪히며 삐걱이는 소리. 숨을 들이쉬는 소리. 내쉬는 소리. 검의… 무게로 ‘지걱’하고 울리는 소리. 무게를 없애자. 

    됐다. 마른 잎의 무게뿐. 

    지쳐 쓰러질 때가지 계속해야지. 아니, 좀 더 잘하려고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백 번이든… 천 번이든… 처음 휘두르는 것처럼. (배가본드 33권)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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