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가 보낸 편지 -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윤해환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편지가 왔습니다. 그래서 읽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팬이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요. 모든 팬들이 저처럼 이런 감정에 사로잡히나요. 기기묘묘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그 자리에 앉아 홀딱 밤을 새며 읽었습니다. 홈즈의 편지가 제게 온 날은 그랬습니다. 홈즈가 보낸 편지와 대화를 나누었던 어느 겨울 날. 이제는 정말로 그날이 17년 전의 일이 된 것처럼 너무나 까마득한 느낌이라 사실 어떤 대화가 오고갔나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다만 아련한 느낌의 훈훈한 온기가 전해졌다는 것밖에…….

 

 

    이상적인 탐정은 세 가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관찰력, 추리력, 지식. 그렇다면 이상적인 탐정소설이 갖추어야할 세 가지 자질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이라면 이상적인 탐정소설은 무엇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김내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할까요. 그런 궁금증을 갖고 윤해환 작가의 소설 『홈즈가 보낸 편지』를 읽었습니다.

 

 

    이와 같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작가를 직접 만나 질문하고 작가의 말을 들어 보는 일, 그건 상상만으로도 굉장히 설레는 일입니다. 아마 소설 속 아이들이 셜록 홈즈의 친필 편지를 받아 함께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과 같을 것입니다.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곧 만나게 될 거라고 기대하는 것.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긴 할지 바로 앞날의 일도 예측할 수 없지만, 막연하게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소망하는 것. 그런 느낌들이 모여서 괜한 흥분을 만들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내성, 카트라이트, 쥬니치로, 산온...! 사냥이 시작되었네!

 

 

    한 데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함께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이한다는 이야기. 이것은 일종의 게임과 같은 느낌입니다. 커다란 하나의 주 임무를 완료하기 위해 바로 앞에 놓인 하위 임무를 완료하고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는 재미난 모험. 강 약 약, 중간 약 약… 리듬을 타며 전개되는 이야기 속 임무들에서 경쾌한 박자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런 박자들 중에서 조금 다른 느낌의 박자 즉, 변주의 형태로서 소설의 마지막엔 방대한 분량의 주석이 자리 합니다. 김내성과 코난 도일, 에도가와 란포, 모리스 르블랑 등 유명한 작가들에 얽힌 세부적인 사실을 모아둔 이 주석은,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숨겨져 있는 소설의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주석에서 보인 인문학적 소양이 소설의 중심을 다잡고 있어 소설의 무게감을 실어주기도 합니다.

 

 

    무게가 느껴지는 진중한 이야기. 그건 아마도 소설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역사 그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경쾌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유학한 조선인, 영국인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를 둔 양인, 군인을 아버지로 둔 일본인 등, 직위나 출신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달라도 너무 다른 각 계층의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모입니다. 거대하게 휘몰아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약한 개인은, 어느 편에 서야 안전한 장소를 찾고 전쟁의 시련을 피하며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격동의 시대는 개인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강요합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개인, 그런 개인은 소설 속 인물 근섭을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결국 개인과 개인이 만나 서로의 손을 잡고, 훈훈한 게임이자 17년간 미스터리로 묶여있던 한 살인사건을 추적하고 해결하기에 이릅니다. 역사가 가해자이고 개개인은 피해자일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홈즈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혹시라도 홈즈가 추신을 남겼다면 그것은 아마도 화해의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메시지는 어떠한 형태로든 소설 속에 존재합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 한치 앞의 미래의 날도 볼 수 없는 대동강 너머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 그리고 이어 조금 더 가까운 뱃머리에서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 다시 그 소리에 화답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만들어낸 하모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개인을 하나의 만인이라 일컬을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피-에수-아이’가 아닐까 합니다. 함께 웃으며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이름. 그래서 이상적인 탐정소설이 가져야할 세 가지 자질은 ‘P, S, I’라고…….

 

 

 

 

 

 


 

 

 

 

    “기기묘묘한 것을 찾으려면 삶 그 자체로 들어가야 한다. 인생은 그 어떤 상상보다 더한 것을 보여주기에.” (122쪽)

 

 

    “왜냐하면 나는 자네의 첫 번째 팬이니까. 이 쥬니치로가 팬이라 자청하는 소설가는 이 세상에 유불란 한 명밖에 없다고!”

    “어처구니가 없다니까.” (153쪽) 

 

 

    소설이라면 트릭이 실패해도 괜찮다. 책이 안 팔리면 그만이다. 현실은 다르다. 치졸하다 비웃은 저들보다 못한 처지에 떨어지리라. 카트라이트가 이야기한 토막민처럼 몰락하리라.

    도망쳐.

    내성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꿈틀거렸다. (228쪽)

 

 

    “어떻게든 데뷔는 해냈어. 자네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별생각 없이 정탐소설을 탐독하다 보니 이곳까지 왔지. 데뷔할 때엔 그저 신이 나서 비로소 조선 최초의 정탐소설가가 탄생하였다! 소리를 질러댔지. 그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겁 없이 덤벼서 이뤄냈는데…… 막상 되고 나니 뭘 써야할지 모르겠네.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긴 하였으나 이후의 일은 생각지 않았거든. (…)” (264쪽)

 

 

    “어떻게든 흐르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밖에 없으이.” (271쪽)

 

 

    “자네는 글을 쓸 때에 진정으로 행복하니까!” (308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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