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의 가문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도쿠가와 이에야스. 100년 넘게 지속된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인물. 250년 에도 막부의 시대를 연 초대 쇼군. 통일 일본시대를 열어 체제의 안정을 바탕으로 일본의 사회, 경제, 문화 발달의 초석이 되었던 인물. 한마디로 말해 세상을 품었던 시대의 영웅. 그런 그가 유훈으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자기 분수를 알아라.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패왕의 가문』은 일본을 제패한 패왕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가 거느렸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현대적으로 해석한 소설, 결국엔 소설입니다. 그런데 어떤 가식적인 영웅담을 통해 인물을 화려하게 치장하려는 모습의 글은 아닙니다. 한 역사의 이야기에서 한 인물의 이야기로, 그리고 다시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글. 그리고 화자는 소설 밖에 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며 해설에 주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의 장점과 함께 단점도 많이 지적해 보이고, 역사적 갈림길에서 저지른 중대한 실수 때문에 이후 어떤 상황이 만들어 졌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또한 가문의 부끄러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쑤시기도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선 꽤 흥미진진한 글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하는 이야기. 그렇다 할지라도 『패왕의 가문』은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재미의 정도가 다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한다면 그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소설을 전문적으로 썼다던 작가 시바 료타로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많은 인물들이 이야기 속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또 배경이 되었던 지역에 대한 수많은 일화들이 함께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야기들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이 마치 세차게 흐르는 강물과 같아 보입니다. 땅을 판 자리에서 품어져 나와 졸졸 흐르기 시작한 샘터의 작은 물줄기처럼, 갑작스레 튀어나온 이야기들이 결국엔 하나의 큰 강을 이뤄 하나의 주요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중엔 이에야스 가문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전체의 이야기라는 큰 대해를 이루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이야기들의 흐름이 장관입니다. 난세를 평정한 영웅의 이야기는 뭐가 되었든 기본적인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에 얻은 트라우마와 그가 다스렸던 지역적 특성 때문에 비교적 영웅적이지 않은 성품을 보였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일본은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고, 그래서 오히려 시대가 요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조심성 많고,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의 의견을 잘 따르는 인물. 영웅이 만들어지기 위한 환경이 좋았던 경우, 즉 시대를 잘 만난 경우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람을 잘 만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란의 시대였음에도 이에야스의 곁에는 한결같은 모습의 우직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항상 관계를 중요시하며 원칙과 신념을 지켜서 얻은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것이 순간엔 어떤 교묘한 속셈으로 인해 조작된 인간관계와 외교관계였을 수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역사를 다시 되짚어보면 결국에 그 모든 것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반대로 도쿠가와 가문의 아랫사람들 또한 윗사람을 잘 만난 경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혼란의 세상을 평정해줄 영웅의 등장이 필요한 요즘의 시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 사람들의 이야기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에게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며 진정한 믿음을 주었던 평범한 군주 도쿠가와 이에야스. 독창적이고 천재적 자질이 없던 이에야스에게는 어쩌면 그가 갖고 있던 수많은 단점들이 오히려 그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위엄과 배려.

    이 두 가지는 옛날부터 일본에서 지도자가 꼭 갖추어야 할 요소였다. 뛰어난 지혜나 용맹한 자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긴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도자의 절대조건은 아니었다. 지혜나 용기 같은 건 수하들이 잘 갖추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20쪽)

 

 

    젊은이는 흉내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독창과 창의, 기지 등을 세상 사람들은 지혜라고 일컫지만, 그런 것은 칼날처럼 위험하여 마침내 오만을 불러일으키고 몸을 망가뜨린다. 자기 나름의 지혜란 알고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만인지도 모른다. 특히 전략의 경우는 고금을 통해 아무리 뛰어난 싸움꾼이라도 그 방식이래야 고작 두세 가지여서 어느 하나에 버릇이 들면 어떤 전장에서도 같은 방식을 쓰게 되어 결국 적의 시야에 노출되고 만다. 같은 방식으로 세 번을 이겼더라도 마지막 한 번을 크게 져버리면 그대로 망한다. (24쪽)

 

 

    그렇다고 해서 이에야스는 ‘도대체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라고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 이 사내는 회의주의자가 아니었다. 섬세한 감수성으로 조그만 일에도 전율을 일으키는 문학청년도 아니었다. 그는 어려운 조건 아래서 살아간다는 데 대해 어떤 열정을 품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는 선천적으로 집요한 성격을 타고난 생명체로 꼬리가 잘리건 다리가 잘리건 혀로 상처를 핥고 침을 질질 흘리며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열정, 아니 생물적인 본능 같은 것을 풍성하게 지닌 사람이었다. 이것이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사내가 가진 비상한 생리적 특성이 아니었을까. 그 복잡하고 살벌한 전국의 세상에서 이에야스나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뛰어난 재능이라는 지엽적이고 사소한 품성 때문이 아니었다. 존재의 깊은 곳에 끈적끈적한 점막으로 감싸인 선천적인 열정과 생명력이 그로 하여금 생존에 적합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123쪽)

 

 

    그가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라기보다는 원래가 그런 사내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젊은 시절부터 추상화하여 자연인이 아닌 일종의 법인처럼 규정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떠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움직였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도 마치 객관적인 사물을 보는 듯이 관리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필요한 것을 처방했다. 그의 내면에 감추어진 비밀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일생은 그것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다. 어디를 보나 영웅의 풍모란 찾아볼 수 없고, 외모도 일상도 그 재능도 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었던 인물에게 다른 사람에게 찾아보기 힘든 어떤 신비가 있다면 바로 이 하나였다. (585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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