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눈으로 본 현대 예술 - 삶을 어루만지는 예술 그리고 철학 이야기
최도빈 지음 / 아모르문디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여 평가하고 점수를 준다.’ 우리는 가끔 개인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객관적인 어떤 기준 같은 것이 분명히 작용했을 것입니다. 다른 기준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고, 아니면 스스로가 미리 정해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말할 때도 이런 기준을 적용해 말하곤 합니다. 상대적이면서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눈과 머리를 갖고서.

 

 

    현대 예술은 굉장히 다양한 범주를 다룹니다. 현대 예술의 형태와 주제 또한 굉장히 독창적이고 특이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예술은 어떤 사조라고 구분해놓기가 힘듭니다. 아무래도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려면 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굉장히 많이 갖고 있어야 하고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공부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현대 예술에 대하여 과연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 의문스럽기부터 합니다.

 

 

    하지만 철학! 철학이라면 가능합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은 개똥같은 예술이 있을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철학적 풀이를 듣고 나면 그 예술의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인다는 말이 바로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철학의 눈으로 본 현대 예술』은 쉬운 것 같지만 어렵고, 어려운 것 같지만 쉬운 현대 예술에 대한 생각을 철학의 눈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저자가 앤디워홀 미술관, 뉴욕 현대 미술관, 도쿄 모리 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트론토 ‘뉘 블랑슈’ 축제 등 북미, 유럽, 일본의 다양한 장르의 미술을 접하며 떠올린 철학적 사고를 정리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꽤나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철학을 이야기하는 글이라 그런지 읽다보면 가끔은 굉장히 어질어질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알찬 내용을 담은 관람 후기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한 글입니다. 그래서 목차의 순서대로 읽지 않고 관심 분야의 예술이나 전시회 이야기만 읽어도 괜찮아 보입니다.

 

 

    현대 예술을 철학적으로 감상한 의미 있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주관적인 맛, 객관적인 미’이란 제목의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서 있었던 ‘와인은 어떻게 현대화 되었나’ 라는 전시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아무래도 예술과 철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 예술을 접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 진정한 평론가들에 대한 조건을 와인의 현대화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들려주는데, 아아! 깊고 풍부한 예술의 맛은 얼마나 많이 경험해봐야 진짜의 맛과 향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일까요.

 

 

    아는 만큼 보이고, 많이 즐기는 만큼 깊이 알게 된다고 합니다. 예술과 문화를 바라보는 평가가 주관적인 의견일 순 있지만, 스스로가 무엇을, 왜 즐기는지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예술작품 앞에 선 관람객의 성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예술을 부정하고 모순에 대한 대립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현대 예술 또한 스스로를 돌이켜볼 줄 알아야 진정한 이 시대의 예술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예술이 기념비가 되는 순간 그 예술적 힘은 죽고 만다. 예술의 힘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은 현재를 고발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으며,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예술은 늘 파괴와 전복을 꿈꾼다. (…) 지난 세기 현대 예술은 박물관의 유물이 되는 데 반기를 들었고, 지산의 진의를 이해할 능력도 없는 기성 집단이 주는 영예들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전위에서 관습의 장벽을 뚫고 돌진하는 역할을 자임하던 현대 예술은 이제 그 안락의 유혹과 싸우게 되었다. 기념비와 자기 파괴를 동시에 꿈꾸는 현대 예술의 이중성은 현대인의 삶을 반영한 결과인 듯하다. (41쪽)

 

 

    전시물이 현대 미술관과 박물관의 첫 번째 고려 대상에서 밀려난 이유는 관객의 방문 목적이 더 이상 ‘어떤 가치 있는 대상을 보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적 소비, 교육 기능, 계층적 지위 등 다양한 상징이 투영되는 ‘관람’ 행위의 관심은 오히려 그 대상이 아닌 행위 자체에 쏠려 있다. 여가 시간을 ‘교양 있게’ 보냈다는 자족감을 들게 하는 데는, 전시물의 유의미성보다는 사람들이 몰리는 고품격 장소의 방문 경험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이 가능하다면 이제 뮤지엄은 수장고에 예술품을 쌓아 놓고 소장품 목록을 매번 갱신해야 했던 근대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립적으로 자기 기능을 수행할 때가 된 것도 같다. (96쪽)

 

 

    젊은이의 순수한 열정이 죽어 버린 사회는 흔히 이야기하듯 경제적 성장 동력만 잃는 게 아니다. 사회가 올바른 가치와 이상을 향한다는 실낱같은 믿음, ‘정의로운 자가 행복하다’는 의심스럽지만 부정해서는 안 되는 진리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힘을 잃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두려운 일이다.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자기를 돌볼 시간과 여유를 주는 일, ‘실용’과 ‘욕망’에서 벗어나 잠시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해 주는 일, 젊은이들의 혼을 사랑해 주는 스승이 되는 일, 이 어려운 일들에 사회가 다시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혼을 돌보아야 한다. (162쪽)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역시 주관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렇다고 객관적인 미가 있음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고 하여 훌륭한 요리의 객관적 맛을 부정할 수 없듯이 말이다. (202쪽)

 

 

    모든 건축의 시작은 사람이다. 도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굵직굵직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여기저기 시작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고 다독인 후 건축을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건축과 디자인을 살리는 것은 그것의 유용성을 즐기고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사람들이니까. (224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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