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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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만으로도 짜릿해지는 그것, 시간여행…. 항상 꿈꾸고 바라는 여행이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이 항상 따라 붙는 비과학적 공상. 그래서 우리는 시간여행이란 소재를 다룬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인 경험으로 짜릿함을 즐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대부분이 꽤 재미있습니다. 매번 기본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소재, 시간여행. 그리고 매번 기본이상의 소설을 발표하는 작가, 스티븐 킹.

 

 

    하지만 시간여행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과 기존의 세상을 잘 융합한 소설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가 입장에선 논리적 비약이 없는 시간여행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어려운 작업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 주로 시간여행이 보인 논리적 오류를 찾는데 주력합니다. 이렇게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을 하듯 매의 눈을 뜨고서 시간여행 소설을 읽는 것은 다른 소설에선 경험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봅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 『11/22/63』은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입니다. 과거 1958년의 어느 날로 돌아갈 수 있는 비밀스런 통로를 발견하고, 그 통로를 이용해 현재의 역사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것이 소설의 큰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재로 돌아왔다가 다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면, 일시적으로 재구성한 과거의 세상이 다시 리셋된다는 점,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왔을 때 이전에 바뀌었던 모든 것까지 리셋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원상복구가 가능하단 것. 그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자, 다른 시간여행 이야기와 차별화를 둔 전략적 요소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쫄깃한 긴장감과 속도감을 얻고서 빠른 진행을 보입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소설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실제로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느낌을 제대로 잘 설명하지 못해서 어지럽게 보일 뿐이지, 소설은 이해하기 쉬운 구성과 빠른 전개로 흥미로운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합니다.

 

 

    미래의 어떤 정보를 현재로 가져올 시간여행이라면 굉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다시 돌아올 시간여행이라면 시간여행자가 갖는 이득이 어떤 것이 있을까, 조금 의아하긴 합니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은 1963년 11월 22일에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막으려 합니다. 현재의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려 한다는 기대를 품고. 그런데 그 결과 만들어진 세상이란 것도 다시 현재로 돌아온 후 확인해봐야 좋은지 어떤지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 예측 불가능한 세상, 미스터리한 세상이라는 소설의 분위기 전체를 만들어 내는데 일조합니다. 아무튼 시간여행은 일종의 도박이라는 것. 하지만 다시 리셋이 가능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

 

 

    자유자제로 시간 조종이 가능한 시간여행에도 치명적인 하나의 부작용이 있습니다. 정해져 있는 자신의 시간, 즉 수명이 반복된 시간여행을 통해 사라져버린다는 것. 계속해서 리셋 할 수 있더라도 양쪽 모든 시간대에 반납한 자신의 수명은 리셋되지 않는다는 것. 암살 저지를 위해 5년의 시간을 보냈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과거에서 보낸 시간만큼의 수명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시간여행이 갖는 묘한 함정이라 봅니다. 그래서 앞으로 2권에서 이어질 이야기를 미리 예상해보자면 아마도…….

 

 

    나비효과. 같은 이름의 영화도 있지만, 보통 시간여행에서 말하는 나비효과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중국의 나비가 태풍을 일으킨다는 말은 있지만, 가뭄을 해소시킬 단비를 내려줬다는 말이 없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암살을 저지하기 위해 기다리는 5년의 시간, 이 시간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과거에 충분히 물들게 합니다. 과거의 느낌들, 사소한 일상과 공기의 향, 과거의 사물과 사람들이 만들어 낸 풍경과 소리에 서서히 감각이 기울고 녹아드는 느낌. 이런 감각에 조금씩 빠져들다간 시간여행을 통해 거국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키겠다는 단호한 결심과 의지는커녕,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구분하지 못한 주인공이 과거에 그대로 정착해버리지나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이야기가 그런 전개를 보이더라도 저는 좋습니다. 미리 예상할 수 있다고 해서 흥을 깨트리진 않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욱 긴장감이 고조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믿고 읽는 스티븐 킹의 소설. 그러나 일단은 이 시간대가 빠르게 흘러가야 합니다. 제 짐작으론 시간여행이 가능한 이 터널의 정체가 나중에 밝혀지길…….

 

 




 


    나는 그의 리포트 꼭대기에 빨간색으로 큼지막하게 A라고 적었다. 그 글자를 잠깐 쳐다보고 빨간색으로 큼지막하게 +를 덧붙였다. 훌륭한 작품이었고, 그의 아픔이 독자인 나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A+에 걸맞는 글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심금을 울려야 하는 것 아닐까? (13쪽)

 

 

    “옷이라는 게 그렇잖습니까.”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제는 얼굴이 창백하고 음울해 보였다. 데리의 다른 주민들처럼 바뀌었다고 할까. “피에로 옷을 입고 가짜 코를 달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죠.” (198쪽)

 

 

    아, 스텝 좀 꼬이면 어때. 이렇게 아름다운걸. 나는 7번 도로를 달려 켄두스케그 서안에 떡하니 자리 잡은 데리를 접한 이래 처음으로 행복해졌다. 나는 그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기며 오랜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 돌아보지 마, 절대 돌아보지 마. 유난히 좋았던 일(혹은 유난히 나빴던 일)을 겪은 뒤에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간은 돌아보게 되어 있다. 목에 회전이 되는 관절이 달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218쪽)

 

 

    ‘들어가서 구경해 보자.’ 내 머릿속에서 이런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이런저런 생각 말고 들어가서 구경해보자, 제이크. 들어가 봐. 여기서 시간은 아무 의미 없어. 여기서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존재야. 너도 들어가 보고 싶잖아. 너도 궁금하잖아. 어쩌면 또 다른 토끼 굴일지 몰라. 또 다른 통로일지 몰라.’ (267쪽)

 

 

    천사. 그 소리를 들은 게 이번이 두 번째였다. 나는 그날 밤 잠이 오길 기다리면서, 다음날 겨울로 향해가는 차갑고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인 채 카누를 타고 일요일의 고요한 호수 위를 떠다니면서 마음속으로 곰곰이 그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수호천사. (407쪽)

 

 

    ‘내가 그렇잖아.’ 나는 불을 끄며 생각했다. ‘완전히 버렸잖아.’ 그런데 잠시 후 귀뚜라미들이 들려주는 자장가를 듣는 순간, 이번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젖가슴만 좋았던 게 아니야. 그녀의 무게도 좋았어. 내 팔에 실리던 그녀의 무게도.’

알고 보니 나는 연애라는 습관을 버린 게 아니었다. (50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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