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2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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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추리소설에 대한 선입견, 편견, 벽견, 색안경… 아무튼 좋지 않은 인상이 박혀 있는 한 명의 독자로서 국내 추리작가들의 단편 추리소설을 읽고 책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물론 좋지 않았던 기억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상처가 있다면 벌써 다 아물어 딱지가 검게 올라앉아 있을 시간이 지나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이라는 단어와 ‘추리’라는 단어가 함께 있는 글을 보면 머리보다 먼저 몸이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다. 상처가 아물려고 그러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는 딱지를 떼어내도 되겠다 싶어서 가려운 곳을 계속 긁다보니, 헉! 또 다시 상처에서 피가…….

 

 

    많이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무언가를 미리 안다고 단정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단계, 지금의 저는 정확히 그 단계에 있는 듯합니다. 이유 없이 투정부리고, 이게 아니잖아 라며 집어 던지고, 제 화를 이기지 못해 울고불고, 정작 몸이 아프다기 보단 그저 서러운 마음에 꺼억꺼억 소리나 지르고, 그러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화를 내며 울기 시작했나 이유마저 기억나지 않음에 온몸엔 그저 짜증만이 그렁그렁.

 

 

    이 모든 반응은 한국 추리소설을 아끼고 사랑하는 데서 온 마음의 병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는 이번이 네 번째. 단편집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짧은 분량의 글로 강한 여운의 번득임을 경험하게 하고, 다양한 작가의 글을 동시에 비교해 볼 수 있으며,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새로운 작가를 소개받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단편집은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그래서 단편집에 이름을 올린 작가의 다른 장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도진기 작가의 「악마의 증명」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이용해 법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악마의 범죄를 법을 통해 증명하고 처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분리 가능한 얼굴을 붙였다가 떼어냈다 하는 단편집의 표지 디자인과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가 적절한 반전을 통해 통쾌한 전개로 이어집니다.

 

 

    가끔 책 이야기를 하다 말고 이야기의 끝을 열린 결말로 남겨놓은 채 하던 이야기를 급히 끝내곤 했는데, 그런 제 모습을 깊이 반성합니다. 단지 스스로가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이고 다른 악의는 없었습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한이 작가의 「유실물」, 누가 이 이야기의 결말 좀 알려주세요. 이게 도대체 뭡니까. 너무 궁금하잖아요!

 

 

    살짝 기울어진 일상의 미스터리가 생활형 탐정의 시선을 통해 삐딱하게 그려집니다. 굳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가장 긴 문장으로 요약해야할 정도의 많은 사건들이 단편 분량의 글에서 연이어 발생하는데, 이 사건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는 과정이 좋습니다. 또한 각각의 짧은 이야기에도 탐정의 애환을 소박하게 담아 놓으려한 앙증맞고도 도도한 느낌이 일품입니다. 이나경 작가의 「오늘의 탐정」은 오늘의 단편.

 

 

    윤해환 작가의 「협찬은 아무나 받나」는 아무나 받을 수 없는 협찬을 둘러싼 질투와 암투, 걸그룹 맴버들 간의 분쟁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소설은 대단한 예지력을 보입니다. 물론 우리 명탐정 설록수라면 세상에 일어날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추리하여 미리 알고 있었을 테니 문제 없습니다. 아무튼 하루 일찍 보는 신문이라 생각하고, 설록수의 활약을 기록했다던 그 싸이월드의 홈페이지를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데 그 주소가 너무 궁금합니다. 아아! 얼마나 궁금한가 하면, 궁금증 때문에 귓가에서 어떤 소리가 계속해서 들릴 정도인데 그 소리는 우쿨렐레의 딩가딩가.






 


    그건 형사소송법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범행을 한 것은 사실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확실한 입증이 안 된 상태에서는 두 사람 다 처벌할 수 없습니다. 절반의 혐의가 있지만 나머지 절반만큼은 무고한 것이니까요. 두 사람 다를 처벌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법률상 어쩔 수 없습니다. 실제와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률의 관점에서 본 진실입니다. (악마의 증명, 33쪽)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저장해 두었던 휴대전화 알람이 주머니에서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유실물, 200쪽)

 

 

    근데 말이야. 내가 아무리 탐정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지만 허울이 좋아 탐정이지, 하는 일을 보면 심부름꾼하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씀이야. 죄 시답잖은 일만 들어온다니까. 우유 급식비나 연애편지의 출처를 찾아 달라는 경우는 이주 양반에 속하고, 가끔은 떼인 돈 받아 달라는 일도 있더라고. 그래, 떼인 돈 말이야. 아무리 의뢰인이 왕이라지만 도대체가 탐정을 뭘로 보는 건지. (오늘의 탐정, 236쪽)

 

 

    때문에 나는 오랜 시간 고민 끝에 한 가지 작정을 했다. 내 취업을 위해서라도 설록수를 세상에 알리겠다! 우리나라에 탐정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천하에 고해 탐정 제도를 부활시키는 운동을 촉발시켜…… 지금 내가 뭐라는 거지? (협찬은 아무나 하나, 352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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