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1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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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죽박죽 얽혀 내동댕이쳐진 이 모든 운명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아는 자, 그는 모든 암흑을 꿰뚫어 보는 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는 그를 가리켜 신이라 부릅니다.

 

 

    프랑스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 빅토르 위고의 세기의 걸작 『레 미제라블』은 역사와 사회, 철학과 종교, 그리고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인간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장 발장’으로 흔히 알려진 바로 그 이야기. 빵 한 조각. 40수의 동전 하나. 은촛대 두 개. 19년의 형벌. 기구한 운명을 기중기처럼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주인공. 당신이 바로 그 사람, 장 발장이란 말이오?

 

 

    빅토르 위고의 글에선 젊음, 열정, 투쟁, 아픔과 같이 뜨거운 것이 느껴집니다. 날개만 보이지 않을 뿐 천사나 다름없는 성자 미리엘 주교에게선 따뜻한 빛이, 어린 딸 코제트를 위해 희생하다 병들고 지치고 미쳐가는 팡틴에게선 시련의 고통이, 법의 집행을 위해 뜻을 굽히지 않는 자베르에게선 강인한 신념과 날카로운 시선이, 스스로가 진실을 향해 내딛는 믿음과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믿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장발장에게선 내면의 갈등이, 이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읽는 이에게 전해집니다. 소설에서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인물, 인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 설정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우연히 발생한 특정 사건들이, 훗날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되고 개인의 운명 전체를 결정짓게 한다는 소설의 설정, 어찌 보면 이것은 굉장히 전형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만큼 기본을 잘 따른 소설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굉장히 쉽습니다. 그리고 빠른 진행을 보입니다. 기본 중에서도 기본. 사회와 인간 사이의 가장 근원적이라 할 수 있는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뱉어내고 있으면서 이야기를 쉽게 이어갈 수 있다는 건, 역시 대단하다는 말밖에 다른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쉬운 문장들 속에서도 문단과 단어의 유기적인 구조, 다양한 어휘를 통해 머릿속에선 어떤 번쩍임을 느끼도록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사회의 음지로 내몰려 버림받은 인물들의 내적 갈등에선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고, 성인의 말씀은 그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경건해지고, 한편으론 몸 전체가 청아해져 어떤 진리의 세상을 엿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글이 사람을 깨어나게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소설의 위대한 힘.

 

 

    빅토르 위고는 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든 지옥의 세상을 말하려 합니다. 우리는 그런 지옥을 필연적 운명이라 하지만, 사실 이 운명은 신이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가 사회를 이루어 만든 지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산 계급 남성의 추락. 기아로 인한 여성의 몰락. 무지와 암흑으로 인한 아이들의 고통. 시간이 흐르고 문명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어둠으로 자리한 지옥의 모습 그대로를 그립니다. 시대가 달라져 들판의 풍차는 사라졌지만 바람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시대도 마찬가지. 그러니 우리는 이 기본적인 이야기를 반드시 읽고 느껴야만 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 장 발장이기에.

 

 


 

 

 

    “도둑이나 살인자를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돼. 그건 외부의 위험이고 작은 위험이야. 우리들 자신을 두려워하자. 편견이야말로 도둑이고, 악덕이야말로 살인자야. 큰 위험은 우리들 내부에 있어. 우리들의 머리나 지갑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영혼을 위협하는 것만을 생각하자.” (55쪽)

 

 

    이어서 그는 자문했다.

    이 불행한 사건에서 잘못은 나 한 사람에게만 있는가? 먼저, 노동자인 나에게 일거리가 없었고, 부지런한 나에게 빵이 없었던 것은 중대한 일이 아닌가? 다음으로, 과오를 범하고 자백하기는 했지만, 징벌이 가혹하고 과도하지는 않았던가? 범죄인 쪽에서 범행에 잘못이 있었던 것보다도, 법률 쪽에서 형벌에 더 많은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쪽의 저울판에, 속죄가 실려 있는 저울판에 과중한 무게가 실려 있지는 않았던가? 과중한 형벌은 범죄는 조금도 없애지 못하고, 입장을 뒤집어, 범죄자의 잘못을 억압의 잘못으로 바꾸어 놓고, 죄인을 희생자로 채무자를 채권자로 만들어 놓고, 바로 권리를 침범한 자 쪽에 결정적으로 권리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탈옥 기도로 계속 가중된 그 형벌은 결국 최약자에 대한 최강자의 폭행 같은 것이 되고, 개인에 대한 사회의 죄악이 되고, 매밀 되풀이 되는 죄악이 되고, 십구 년간 계속된 죄악이 되지 않았던가?

    그는 자문했다. 과연 인간 사회는 그 구성원들에게 어떤 경우에는 부조리한 무분별을, 또 어떤 경우에는 무자비한 경계를 모두 똑같이 받아들이게 하고, 결핍과 과다 사이에 노동의 결핍과 징벌의 과다 사이에 한 가련한 인간을 영원히 붙잡아 놓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재산 분배에서 가장 적은 몫을 탄, 따라서 가장 배려를 받아 마땅한 구성원들을 사회가 그렇게 대우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닌가?

    이런 질문들이 제기되고 해결되었으므로, 그는 사회를 판결하여 유죄를 선고했다.

    그는 자신의 증오심으로 사회를 처벌했다. (164쪽)

 

 

    사랑은 과오다. 좋다. 팡틴은 과오 위에 떠 있는 순결이었다. (232쪽)

 

 

    이 팡틴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가 한 여자 노예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서? 빈궁에게서.

    굶주림에게서, 추위에게서, 고독에게서, 버림에게서, 궁핍에게서, 비통한 매매. 한 영혼과 한 조각 빵과의 교환. 빈궁은 제공하고, 사회는 받아들인다. (334쪽)

 

 

    생각이 하나의 관념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은 바닷물이 해변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선원은 그것을 밀물이라 부르고, 죄인은 그것을 후회라 부른다. 신은 바다처럼 영혼을 밀어 올린다. (398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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