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6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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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의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삼 대에 걸친 한 부유한 상인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터키의 역사, 문화, 정치, 사회적 갈등, 동서양의 간격, 혁명과 계몽, 인생의 의미 등의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내용의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그 세상 안에 속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 내면을 장악한 사고 등 세부적인 묘사와 다양한 접근으로 감각적인 소설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소설? 맞아. 대단하긴 하지…….’



    특히 하나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등장인물의 속사정을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며, 미묘한 변화를 주는 느낌이 좋습니다. 무어라 확정할 수 없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 시간에 따라, 그들의 처지에 따라, 우연히 발생한 사건에 따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생은 차갑기도 하지만 따뜻하기도 하다, 빠르기도 하지만 느리기도 하다, 라는 말처럼 모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모순! 맞아. 인생은 모순이야. 그래서 나는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지. 내가! 내가 이 소설을 읽고서 무엇을 느꼈다고 이런 글을 쓰는 거지? 맞아, 모순이야. 이런 게 바로 모순이라고!’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이런 생각들을 작은따옴표 안에 넣어 쓰고 있는 것일까.’ 소설 속의 인물, 특히 제브데트 씨의 둘째 아들과 그의 친구들 모두는 그들 내면에서 혁명을 외칩니다. 그런 혁명이 개인에 속한 문제든, 한 나라에 대한 문제든 모두가 변화를 꿈꾸고 미래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매번 토론을 할 때마다 의견 차이를 보이며 다툽니다. 동상이몽. ‘하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잖아. 다른 꿈이 아니라고!’ 그들이 말하는 혁명은 그것에 대한 열정과 감정의 온도, 그리고 신념과 지혜를 향한 이성의 예리함,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서 오는 방식의 차이를 보이며 그들을 항상 다투게 합니다. ‘그들은 왜 항상 그렇고, 우리는 왜 아직 이런 것일까.’

 

 

    그런데 다시 소설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뒷이야기를 할 때, 이 친구들은 젊을 때 품었던 생각과 전혀 다른 인생의 궤도를 달리게 됩니다. ‘한 권의 소설로 여러 인생을 관찰한다는 것은 괜히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 삼 대에 걸친 인생들이 한 권의 소설에 들어가 버리다니……. 인생이 이토록 짧고 허무한 것이란 말인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들의 인생이 말하고자 한 것은 그런 게 아니라…….’ 두 개의 평행한 선이 있다고 쳤을 때 한 직선에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나 작은 각도로 틀어졌다면 평행하던 선은 우주 너머의 한 지점에서 교차하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행해 보일지라도 더 이상 평행하지 않은 궤도. ‘오늘 하루의 일은 미미할 정도로 작은 변화의 각이라 우리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 있을 테지만, 인생 전체를 두고 보면 오늘 하루의 일이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란 것을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그때가 되어서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어. 맞아! 이미 인생은 궤도를 따라 한참을 달린 후일 테니까…….’

 

 

    ‘오늘 나는 조금 흥분하며 책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소설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고민하게 하고 질문하게 합니다. 자신에게 속삭이는 마음의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가족과 일에 대한 이야기,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 삶과 미래, 목표,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질문이 있을지언정 명쾌한 해답은 없었어. 아니! 어쩌면 답은 있지만 내가 아직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몰라.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책에 있을 거야. 그런데 과연? 이 소설 안에 내가 원했던 답이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왜 이 소설을 읽는 데 이토록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일까.’ 소설속의 인물들과 마찬가지 이런 고민들은 아마도 책을 읽는 우리 모두가 항상 하는 것일 겁니다.

 

 

    ‘이런 생각들만 머릿속에 가득 찬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인 척하고 싶기도 해. 지금 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부정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투덜거려야할 것 같아. 이 소설을 읽고서 소설에 대해 조롱하는 글을 쓴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무언가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 여기겠지.’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인생 궤도를 확실히 정하고 그 궤도에서 일부분 성공을 이루어 내겠다고 다짐한 소설 속 친구의 말,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자살해 버릴 것이라던 그 친구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돕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궤도는 어디일까. 나는 언제까지 살다가 죽기를 다짐해야 할까. 액자 속 사진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은 제브데트 씨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려 할까……. 아…….’ 하는 생각에 탄식의 한숨이 나옵니다.

 




 


    “그때는 뭔가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게 필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았지!”

    그러고는 흥분해서 덧붙였다.

    “하지만 넌……. 너도 알잖아. 한번 알게 되면 어쩔 수 없다는 거.” (59쪽)

 

 

    선로 부설 작업으로 번 돈으로 니샨타쉬에 땅을 사고, 다시 자신이 데리고 있는 기술자들과 함께 선로를 깔고, 또 땅을 샀다. 담배를 피우며 돌아다니던 노동자 하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다 선로를 까는 사람들을 보며 갑자기 “내 삶은 궤도를 이탈했어!”라고 말하고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76쪽)

 

 

    “당신이 말하는 공통된 견해라는 건 공통된 열정일 뿐이오. 우리의 차이에 대해 말하겠소. 당신은 혁명의 유일한 힘이 정부와 핵심 멤버라는 걸 이해 못했소. 시골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여 그들이 더 좋은 조건에서 살게 하고, 그들에게 현대적 시설을 가져다주려는 게 당신 계획이오. 그건 모두가 바라는 바요. 하지만 당신은 단지 그것만을 바라고 있소. 당신은 다음과 같은 건 이해 못하오. 당장, 저절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이오. 우선 국가가 더 강력해져야 하고, 예전의 힘을 지켜야 하고, 바로 이 힘으로 전진하면서 장애물을 무너트려야 하는 거요. 국가가 먼저요! 터키에서는 국가가 고유한 위치에 있다는 걸 당신은 이해 못한 것 같소!” (184쪽)

 

 

    ‘나는 뭘 원하지? 내가 뭘 원하는지는 분명해! 그럼 다른 사람에게 그건 무슨 의미일까, 의미가 있을까? 단순해. 난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도 않고, 작은 걸로 만족하고 싶지도 않아.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나 새로운 물건, 새로운 집, 아이들, 가족에 만족하며 살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이런 것 대신 뭘 원하지? 나? 나! 난 늘 ’나, 나‘라고 하지. 추하다는 건 알고 있어. 나는…….’ 그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뭐가 되고 싶지 않은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뭐가 되고 싶은지는 모르지! 나는 젊어. 또 생각이 시작됐군! 그만해야지. 생각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 괜히 술을 마시기 시작했군!’ 그는 이런 생각과 술이 역겨워져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214쪽)

 

 

    “내일 뭐 할까? 그다음 날은 뭐 할까? 그리고 그 이후엔 또 뭐 할까.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린 뭘 할까?”

    “당신은 사무실에 나가잖아…….” (265쪽)

 

 

    내 삶에는 반드시 목표가 있어야 하고, 난 명예롭게 살 것이다. 헤르 루돌프에게 썼던 똑같은 딜레마. 어둠과 빛?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다. 살아 있기 때문에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느낀다!

십 분 후. 아니다! 모든 게 바보 같다! 아무에게도 편지 따위는 쓰지 않겠다. 나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난 바보 천치니까. (391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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