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5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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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 씻고 일하러 나갑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고 보통의 일을 합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라 하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입니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 점심을 먹습니다. 커피도 한 잔 마십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오후의 업무를 시작합니다.

 

 

    매일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다르다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듯하지만, 사실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로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균형 잡힌 느낌. 모든 것이 적당합니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또 집으로 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운동을 할 때도 있고, 책 읽을 때도 있고. 그러다 밤이 되면 침대로 가서 잠을 잡니다.

 



    모든 시대가 변화의 시대이고 위기의 시대입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세대가 본인의 세대를 두고서 급변하는 시대이자 시대를 넘어가는 과도기라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급변’이란 단어는 꽤 오래전부터 자주 들었던 단어라 이제는 우리에게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변화란 것은 항상 급하게 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1900년대 초, 변화하는 터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제브데트 씨는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자신의 사업을 번창시켜서 가정을 꾸리고, 중산의 위치에서 조금 더 높은 곳을 향해 신분상승을 이뤄냅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 같은 인물.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를 살면서 적당한 조심성을 갖추고 이익을 위해선 약간의 복종도 괜찮다고 여기는 온정적 보수주의의 평범한 상인. 우리는 이러한 인물을 매사에 적절함을 강조하는 기회주의자로 볼 수 있지만, 아마도 당사자는 스스로를 합리화하여 합리주의자라 말할 것입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온정적 보수주의는 세상의 작은 흔들림에도 크게 영향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랬고, 현재 우리들이 그러한 것처럼 위기의 시대 중간에 걸쳐있는 세대는 잔바람에도 이리저리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변화의 바람으로 인한 큰 일교차를 겪어야만 합니다. 가장 먼저 혼란을 느끼고, 가장 늦게 안정을 되찾고. 그러다 문득 그들은 그들이 서있을 땅이 좁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물론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이상적인 무언가를 향한 혁명적 사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쯤은 책을 통해 충분히 배워 알고 있긴 합니다만, 일단은 스스로가 두 발을 디디고 서있을 한 평의 땅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사업과 내 가족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인생의 궤도는 그런 데서 생겨납니다.

 

 

    그렇다고 책을 통해 배운 대로 “세속적인 인생은 틀렸잖아요.” 라는 말을 섣불리 할 수도 없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속에서 제브데트 씨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은 평범하고 나약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 속에서 저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균형과 불균형이 공존하는 삶. 어쩌면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군상에게서까지 언뜻 발견한 얼굴들이 저에겐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내 삶 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일까. 이제 와서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무언가 충분히 납득할 만큼 이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그저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적당히 걸쳐 살며 평범한 일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추진력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시대가 변하면 변하는 대로, 시간이 가면 가는 대로 그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주체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변화란 것은 항상 외부에서 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넌 이것 말고 다른 건 이해하지 못해! 내가 계몽이나 빛을 말할 때, 너의 이성은 반짝이는 돈밖에 떠올리지 못하지. 하지만 너의 그런 점이, 돈 이외의 것엔 가치를 두지 않는 점이 좋아. 그게 널 합리적으로 만드니까. 넌 이해 못해. 하지만 넌 약속했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난 내 아들이 상인의 집에서 자라길 바라는 거야. 상인의 집에서, 게다가 너의 빈손에서 시작한 상인의 집에서는 모든 게 계산에서 나오지. 계산이 있는 곳에는 이성이 있어, 두려움이 아니라.” (129쪽)

 

 

    ‘서로 뒤섞이고 있어. 두 가지 삶을 어떻게 분리하지?’ (153쪽)

 

 

    하지만 결국에는 불행해질 거요……. 타협을 해야 하거든. (389쪽)

 

 

    “너는 불행할 권리가 전혀 없어. 알아들어? 그럴 권리가 없다고! (…)” (402쪽)

 

 

    여기서 읽은 게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까? 매일 아침 내 인생을 바꾸고,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뭔가를 볼 거라는 희망을 품고 신문을 읽는다. 어쩌면 세계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어떤 사건이라도. 전쟁이 일어나는 건 원치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건 내 인생을 바꿔 줄 어떤 사건이다. 나 자신에게서는 내 인생을 바꿀 힘을 찾을 수 없다. 내가 아는 건 이 집과 회사에서의 삶이 명예로운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고, 게으르고 추레하고 더럽고 편협하고 가련하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해야 한다고, 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무히틴은 말했다. 그의 말이 옳다! 이 말을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하지만 부족한 게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이런 걸 ‘균형감’이나 ‘조화’라고 하지만 그게 뭔지는 말할 수 없다. 무히틴이 “복에 겨웠군!”이라고 한 걸 생각하면 신경질이 난다……. 여기서 몸을 떨며 이런 걸 쓰고, 아침까지 어떤 책을 읽을지 생각한다. 어쩌면 외메르에게 편지를 쓸 수도 있겠지. (410쪽)

 

 

    ‘그에게는 신념이 있어. 그게 터무니없고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난 그런 신념을 지닌 사람에게 추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무히틴은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 신념과 남자의 분노가 터무니없고 공허해 보여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왜 저렇게 흥분하지? 저렇게 흥분할 게 뭐가 있지?’ (51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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