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1 - 드라마 대본집
박경수 지음 / 북폴리오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씬 1. 크롱의 집, 책상 앞

 

 

크롱과 에디는 책상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다 말고 대화를 나눈다.

 

 

크롱    (검은 뿔테 안경을 쓸어 올리며) 에헴, 그러니까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에디    또 무슨? 똥 폼을 잡아가며 책 이야기를 하려 그러시나? (비아냥거리는 표정)

크롱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겸연쩍은 듯) 나는 그저 책 이야기를 하려던 것뿐 이라고!

에디    (크롱 앞에 놓인 책을 집어 들며) 대본집?

크롱    응. 지난번에 블로그 이웃이 꼭 보라며 추천했던 드라마야. 추적자라고. 여름 즈음인가? TV에서 방영했던 거야.

에디    그런데 한번 봤던 드라마를 책으로 왜 또 보는 건데?

크롱    사실 드라마를 못 봤거든. 요즘 책을 많이 읽다보니 상대적으로 TV볼 시간이 줄어서 말이야. 이건 어쩌면 키스를 글로 배웠다는 O양의 경우와 같다 할 수 있어. 드라마를 눈으로 본 게 아니라 글로 읽는 경우니까.

에디    (한심하다는 듯) 그래서 자랑이다.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크롱과 에디는 대화를 끊고 요란하게 흔들리는 대문을 바라본다. 문 밖에선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포비    (다급한) 빨리 문 열라고.

크롱    뭐가 그렇게 급해. 릴렉스. 릴렉스. 워. 워. 제발 진정하라고.

 

 

크롱은 문을 열어주고, 포비는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 실망한 듯 크게 숨을 내쉰다.

 

 

포비    (한숨쉬며) 아직이야? 아직 도착 안했어?

크롱    (포비를 바라보며) 응, 아직이야. 조그만 기다리면 돼.

에디    (포비가 온 것에 신경 쓰지 않으며) 마저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시지?

크롱    (방으로 들어가며) 응, 그래서 이 대본집은 박경수 작가가 제대로 된 극 하나를 만들어 보고자 한 큰 뜻을 품고서 세상에 내 놓은 건데, 기승전결이 맞아 떨어지고, 개연성도 충분하면서, 인물들 간의 관계도 복잡간단하고, 또 대단한 흡인력을 보인 극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박경수 작가는 그런 일생일대의 극을 만들어보자 다짐하고 미친 듯이 썼다고 하더라고. 촬영 일정에 쫓겨서 쪽 대본도 만들어가며 말이지.

에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친 듯이….

포비    (일그러진 얼굴, 계속해서 안절부절 못해 하며 두리번거린다)

크롱    아무래도 드라마는 각 회마다 시청자들을 계속해서 붙잡아 둬야 할 거 아냐. 그래서 추적자에서도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사람을 잡아 놓는 맛이 느껴져. 시답잖은 멜로나 극중 인물의 일상의 모습을 보이기보단 몰아치는 느낌으로 16부작을 완성했다고나 할까.

에디    그런 느낌은 소설도 충분히 보일 수 있는 거잖아.

크롱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에디가 들고 있던 대본집을 뺏어 들며) 그런데 대본집으로 드라마를 읽으면 드라마의 기본을 볼 수 있어. 극이 보인 배경을 조금 더 확장해서 촬영 중인 세트장의 전반적인 풍경까지 볼 수 있거든. 그리고 연기자들이 내뱉는 숨결로 느껴져. 추운 겨울날 야외 촬영장에서 몰아쉰 하얀 입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킥킥 웃는다) 그런데 그게 조금은 거친 느낌이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해. 그래도 꽤 재미있단 말이지. 드라마 시나리오 작업, 그리고 연기를 준비하기 위한 대본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 지는구나, 하는 것도 대충 알 수 있고 말이야.

에디    (곰곰히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 으음…. 그렇단 말이지. (다시 크롱이 들고 있던 대본집을 뺏어 들며) 그런데 안에 대본 용어라고 해야 하나, (책을 펴며) 아무튼 조금 독특한 구조의 글이 보이는데?

크롱    응. 맞아! (조금 큰 소리로) 바로 그거야!

포비    (깜짝 놀라며) 드디어 왔나? 온 거야?

크롱    (포비를 진정시키며) 아니, 조금만 더 기다리래두.

포비    (울먹이는) 아……. 죽겠단 말이야. (털썩 주저 앉는다)

에디    (한숨)

크롱    (에디를 바라보며) 그래서 이런 대본집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라. 일단 인물들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이미지화해서 대화가 오고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그런 것이 대본 용어와 섞여서 꽤 혼란스러운 느낌이거든. 그런 방해를 받지 않으며 극에 몰입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이 중요해. 그리고 꽤 힘들어. (검지 손가락을 펴며) 또한 인물들이 보인 행동을 짧게 요약된 어떤 지시어로 읽어야 하는데, 그런 서술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게 조금 건조한 느낌일 수도 있고 말이야. (에디가 들고 있던 대본집을 다시 뺏어서) 하지만 추적자의 극은 TV드라마로 이미 한차례 인정받았으니 재미는 충분히 보장한단 말이지. (책을 요리저리 흔들며) 어때, 빌려 줄까?

에디    (크게 숨을 내쉬는) 아직 읽을 책이 많이 있는데….

 

 

갑자기 울린 초인종 소리에 대화가 끊긴다. 잠깐의 정적. 방 안에 있던 셋은 묘한 미소를 보이며 두 눈을 반짝인다. 포비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용수철 튀어 올라 쿵쿵 소리를 내며 다가간다. 그리고 대문을 연다.

 

 

알바    (들고온 비닐을 내밀며) 치킨이요.

포비    (크게 웃는) 아싸리비아. 콜롬비아. 호이호이. 왔구나. 왔어. (큰 엉덩이를 조금 씰룩거린다)

에디    (한숨, 어깨를 조금 들썩거린다)

크롱    (장난스런 표정으로 웃으며) 일단 치킨이 왔으니 먹고 나서 책 이야기를 마저 해볼까?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알바는 치킨을 바닥에 내려놓고 카드리더기를 꺼낸 다음 크롱이 건넨 카드를 받고 결제를 한다. 그리고 카드와 영수증을 크롱에게 건네고 천천히 문 밖으로 나간다. 그때 포비는 치킨을 순식간에 방안 가득 펼쳐놓는다. 곧바로 셋은 말없이 치킨을 뜯는다. 포비는 양손에 치킨 다리를 들고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수정    아빠… 고마워. 정말… 고마워.

홍석    (눈물이 그렁해진다. 손을 뻗어서 만지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 거리다)

수정    …아빠는… 무죄야. (2권, 330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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