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굉장히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사실 이승우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입니다. 뒤늦게 알았다는 것에 대한 어떤 죄의식 때문일까, 아무튼 몇 권의 소설을 짧은 기간 동안 급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소설마다 비슷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언뜻언뜻 스쳐지나가는 듯해 참으로 묘합니다. 소설쓰기는 작가의 인생을 그대로 드러내놓는 행위이구나, 혹은 아무리 숨기려 한다 해도 저절로 작가의 인생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구나, 등등의 생각을 해봅니다.



    『지상의 노래』는 죄인들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노래에 대하여 정확히 무엇이라 단정하듯 말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혹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지 증명할 길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는 첩첩 산중 꼭대기에 위치한 한 수도원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수도원 벽에 가득 적힌 성경 구절의 벽서는 누가, 어떤 연유로 쓴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런 핵심을 쫒다보니 등장하는 모든 죄인들의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적인 성향의 소설에서 죄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결국 구원받는다는 결말로 이어진다면, 사실 그들이 속죄하기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가두었는지 여부를 떠나 구원받아 안식을 얻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죄는 사라지지 않는데, 소설의 초점은 죄에 있지 않고 죄를 씻어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또 그런 과정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경건하게 치장하려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아무리 걷고 또 걸어서 성지에 다다른다 하더라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고, 길바닥에 자기 머리를 수십 번 내리 찍는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죄의 경중을 떠나서 이런 점은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라, 사실 뭐가 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이야기 자체는 쉬워 보이지만, 묘사하는 행위의 의미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종교적 사건에 대한 비유, 인물의 내면에 대한 묘사, 사유의 흐름과 결정, 어떤 갈등과 죄의식, 수치심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받아들인 내용이 사실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아닐지 몰라서 계속해서 소설 속에 숨어 있는 어떠한 뜻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소설은 희미해지고 처음 안다고 여긴 어떤 것까지 사라집니다. 무언가 아득해지는 느낌으로.

 


    아마도 그런 느낌은 소설이 보인 서술 형태 때문일 것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이야기, 소설의 느낌이 딱 그러합니다.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이가 한 명 있는데, 그는 바로 작가 자신일 것입니다. 작가는 곧 소설 안에서 신과 다름없으니, 이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그 말씀에 따르면 소설 안에서 작가는 신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니,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이는 소설을 부정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나, 그런 부정 자체가 작가의 존재를 일부 시인한 것이라 볼 수 있고, 그것은 소설을 부정하지 않기를 부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소설을 부정하지 않기를 부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는 소설과 작가의 관계를 부정하지 못한 부정일 수 있기 때문에 소설 안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당연함은 오히려 당연한 부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당연한 어떠한 것을 규정하기 위해 한참 동안 돌고 도는 서술을 보이는데, 이 과정이 마치 아래로 내려오는 말씀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한동안 제 귓가에서 떠나지 않은 채 왕왕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아득한 느낌만 남았습니다. 반박할 수 없어서 그저 믿을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입니다.

 


    성경과 마찬가지, 소설도 독자의 경험, 현재의 상황,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떤 생각들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감동과 깨달음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갑자기 책의 글자들이 그대로 튀어 올라와 가슴에 새겨지는 느낌으로. 『지상의 노래』도 저에게 어떤 것을 새기려 합니다. 그것은 난해하진 않았지만 무척 낯선 느낌입니다. 각자가 저지른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방식에서 소설이 표면적으로 보인 것 외에 어떤 다른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갑갑하기도 하고 계속해서 겉도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너무나 낯섭니다. 그래서 그저 이해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어서 어떤 모호한 느낌의 신비롭다는 감상만으로 경건한 마음을 표현할 뿐입니다.

 





    몇 명의 호사가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 책의 리뷰를 포스팅했지만 …. (20쪽)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고 묻는다면 왜 그럴 수 없지?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랑의 열병에 사로잡힌 이 젊은 남자는 자기 자신에게 쉼 없이 그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 여자에 대해 네가 아는 게 뭐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그래?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수없이 질문을 되풀이한 끝에 그는 반문의 형식으로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왜 그럴 수 없지? 왜 그러면 안 되는데? (50쪽)

 


    절대 권력에 대한 종교적 헌신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그것은 일종의 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으로서의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해 온 일들을 그만두겠다고 공언한 셈인데, 그 일은 그가 10년 넘게 꾸준히 해 왔고, 그의 존재를 구성했으며, 그 결과 그 일과 그의 존재가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친밀했으므로, 존재의 위협을 무릅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166쪽)

 


    그녀는 이 세상을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 이 세상의 법칙은 그녀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숭고하고 위대해 보였지만 동시에 무모하고 두렵기도 했다. 아주 가까이에 있었지만 누구보다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래 함께 살아왔지만 처음 만난 것처럼 낯설고 거북했다. 문제는 그녀의 말들에 공감할 수 없었지만 무시해 버릴 수도 없다는 데 있었다. (183쪽)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길 위에 몸을 올려놔 봐요. 나는 도움이 됐어요. (30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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