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우타노 쇼고 지음, 한희선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이사를 가면 새 집에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조금 있겠지만, 저는 이사 온지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적응기를 갖고 있습니다. 밤에 혼자 집에 있으면 조금 무섭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소리 내어 뭐라고 중얼거려 보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러면 텅 빈 벽을 타고 울려 다시 귓속으로 들어온 제 목소리가 더욱 텅빈 집을 무섭게 만듭니다. 또한 괜히 우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겸연쩍게 웃어 넘기곤 그짓을 그만 두기로 한지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날 우리 집에서 매우 기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할 그 이야기는, 우타노 쇼고《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를 읽으면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이전부터 계속해서 그래왔던 것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어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은 단편집입니다. ‘집’이라는 주제의 본격 추리소설 다섯 편이 실려 있습니다. 대부분이 밀실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무언가 독자와 승부한다는 느낌보단 이런 이야기도 있다고 들려주며 작가 스스로가 재미있어하는 느낌의 글입니다. 짧은 이야기인 만큼 등장인물도 한정되어 있고, 거의 직접적으로 단서를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진행을 보여서 쉽다면 쉽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강렬한 무언가에 의해 한방 얻어맞았다고 느낄 정도의 충격적인 트릭을 보이진 않지만 뭐랄까, 작가가 스스로 재미있어 하니깐 덩달아 읽는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느낌의 글이란 느낌입니다.


 

    이런 재미는 어쩌면 저만 느끼는 것일지 모릅니다. 우타노 쇼고의 글에선 작가 스스로가 글을 쓰며 노력한 어떤 모습들을 흘려 놓습니다. 굉장히 미미한 부분이라 그것을 딱히 무어라 말하긴 힘들지만, 아무튼 노력의 흔적들이 보입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려다 그만둔 흔적, 독자들의 반응을 한번 살펴보기 위해 일부러 심어놓은 장치, 알려주지 않아도 될 부분을 숨겨놓기까지의 최소한의 한계, 도입부분의 서술 형태 변화, 관련 없는 단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기법 등을 흘려 놓고 작가 스스로가 재미있어 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미완의 작품이란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의 글은 실험입니다. 그리고 이 단편집은 실험실입니다. 아마도 이런 실험을 통해 무언가 깨닫고 느끼는 바가 생겨 작가 스스로가 어떤 결론을 내리고, 또 다른 실험을 위해 새 소설을 쓰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실험을 통해 그의 소설은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88년 그의 데뷔작 『긴 집의 살인』을 시작으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밀실 살인 게임』까지. 그의 소설은 정말로 출간 년도 순서 그대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가 나온 년도를 확인하면 그의 소설 중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소설이란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이 단편집 안의 다섯 편의 이야기도 순서대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단 것입니다. 물론 각 소설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취향 차이로 나뉠 수 있으나,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어서 한편으론 오싹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몇몇 단편은 정말로 오싹한 내용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요. 늦은 시각 집에서 혼자 이 소설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에서 와당탕탕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서, 어쩌면 진부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고, 등줄기를 타고 무언가 파르르르 올라오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아무튼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 부엌으로 가서 떨어진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했습니다. 비스듬하게 세워둔 도마가 싱크대에 떨어지며 낸 소리더군요. 그래서 다시 도마를 원래 있던 자리에 세워두고 다시 방으로 가려던 순간, 또 다시 와당탕탕 하는 소리를 내며 도마가 싱크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앞에 있던 거울에 비친 부엌의 모습을 보고서 저는 그만…….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영원히 이 집과 함께 있다. (152쪽)

 


    안타깝게도 이 기묘하게 비틀린 사건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는 없다.

    몇 십 년이나 지난 옛날의 이야기다. 시효도 한참 전에 지났다. 따라서 지금 내가 고백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당국에 의해 처벌받거나 할 일은 없다.

    그러나…… (235쪽)


 

    “대체 누가 죽였을까?”

    이 말에도 대답은 없었다.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는 게 당연한가. (276쪽)

 


    요컨대 질서는 일단 유지되는 상태라는 거지. 그것을 일부러 깰 필요가 있을까? 진실, 진실, 해도 대체 누구를 위한 진실이냐는 말이지. 닥치는 대로 정보를 공개해서 질서를 혼란시키는 게 정의일까? 세상에는 ‘필요악’이라든지 ‘거짓도 방편’이라는 말이 있어. 사람이라는 생물은 거짓말이나 악을 잘 이용해서 지금까지 계속 번성해 왔지. (306쪽)

 


    이렇게 ‘잘되면 좋고 실패해도 의심받지 않으니까 문제없다’고 하는, 성공률이 낮을지 모르지만 죄가 발각될 확률도 지극히 낮은 소극적인 계획범죄가 프로버빌리티의 범죄다.

    요컨대 운을 하늘에 맡긴 범죄다. 그렇지만 되는 대로, 라든지 무계획과는 다르다. 교묘하고 교활한, 어떤 의미에서 제일 질이 나쁜 범죄다. (375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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