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에 가다 - 차와 사람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공간
안혜연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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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그가 우리 집에 왔습니다. 그는, 아하! 당신은 이런 데서 이렇게 하고 살고 있군요, 하는 표정으로 신기한 듯 집안 곳곳을 둘러봅니다. 사실 둘러보는데 채 일 분도 걸리지 않을 공간인데도 이것저것 살피는 척하며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는 이유는, 아마도 좁은 공간에 둘만 있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나는, 커피 마실래요? 라는 말과 함께 부엌으로 숨어버립니다.

 


    집에는 에스프레소 기계도 없고, 핸드드립 기구도 없습니다. 사실은 커피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고작 마신다는 커피는 시내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혹은 마트에서 파는 200개들이 커피믹스 정도였으니까요. 지금까지 마신 커피의 99퍼센트 정도는 아마도 커피믹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특별한 커피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은 단지 마음일 뿐, 집에는 종류별로 모아둔 커피믹스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스턴트커피를 준비하기로 합니다.

 


    그래도 신중하게 커피믹스를 골라봅니다. 노랑, 빨강, 검정, 갈색, 어느 것이 좋을까. 그리고 잘 쓰지 않아 찬장에 높은 칸에 넣어두었던 예쁜 커피 잔을 꺼냅니다. 오늘을 위해 지금까지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나 봅니다. 그러다 물이 끓길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그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부엌 밖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 그에게로 시선을 옮기다, 주전자가 삑! 하는 소리를 내자 깜짝 놀라 다시 부엌으로 숨고선 분주한 척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무언가 크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다 끓은 물은 일단 차가운 커피잔을 따뜻하게 데우는데 조금 사용합니다. 그리고 물이 너무 뜨거워서 커피 가루를 태우지 않도록 뜸을 들여 기다립니다. 그러다 적당한 온도가 되면 커피믹스를 털어 넣은 잔에다가 적은 양의 물을 재빨리 붓습니다. 빠른 물살을 타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동시에 고루 섞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완성된 두 잔의 커피를 들고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갑니다. 고마워하며 잔뜩 기대하는 눈치로 천천히 커피잔에 입술을 가져다 대는 그 사람, 그리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 나의 표정. 그에게 내가 만든 커피의 맛은 어떨까, 그의 입맛에 맞긴 할까, 혹시나 그에게 너무 쓰거나 달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궁금해 하는 마음.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올 첫 마디 말을 기다리는 순간, 시간, 기억. 긴장과 설렘. 그래서 커피 향이 가득한 우리 둘만의 공간.



    “누군가가 당신만을 위해 커피를 끓여주면, 더욱 맛이 좋은 법이지.”

 


    『그 카페에 가다』는 공간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사연이 있습니다. 물론 카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맛집을 소개하려는 실용서가 아닙니다. 각 카페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들려주려 합니다. 그리고 주제에 따라 다양한 느낌의 카페 분위기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또한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까지 보탭니다. 커피에 대한 지식도 물론 얻어갈 수 있습니다만, 단지 외우기 위한 지식보단 카페 문화에 대한 감성을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권의 책에 향긋한 커피 향이 배어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당신만을 위한 카페를 찾고, 그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커피의 원가가 몇백 원이 채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무려 10배가 넘는 금액을 흔쾌히 내면서 카페로 향한다. 그것은 비단 커피 한잔을 뱃속에 밀어 넣고 싶은 욕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커피 한잔보다, 그 안에 깃든 문화에 더 마음이 솔린 것이다. 사람들이 카페에 가는 이유는, 카페에 담긴 수많은 문화의 매력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까닭이다. (6쪽)

 


    차를 주문하면 다구를 정갈하게 준비해서, 노련하게 차를 우려내는 김인민 대표. 그녀는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을,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에 빗대었다. 보들레르는 대도시에 대한 환멸의 상징으로, 보란 듯이 거북이와 도시 산책을 나섰던 인물이다. 대도시 서울에서 차를 마시는 건, 거북이와 산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89쪽)

 


    쿠폰 제도가 독특하다. 다른 카페와 차별화할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하던 노장수 대표는 디바인인터랙티브에 아이디어 회의를 제안했다. 회의에서 나온 아이템이 바로 빙고 쿠폰. 일반적인 카페에서 10개의 도장을 찍으면, 음료 한 잔을 무료로 주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로또 기계에서 번호를 뽑으면, 그 번호에 도장을 쿡 찍어준다. 운이 좋게 1, 2, 3이 연달아 나오면 단 3번 만에 무료 음료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단, 이미 찍힌 번호와 같은 번호가 나오면 꽝. (125쪽)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온갖 감언이설로 구워삶아 그 녀석의 목덜미를 지그시 붙잡고 가서 에니어그램으로 성격을 파악해 보자. 그것은 좀 더 둥글게 살기 위한 노력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할 때, 비로소 사람 속에 사는 진정한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195쪽)

 


    예술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 삶의 여유를 잔뜩 거머쥔 자들의 것이라 치부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았던 사람이라도 이곳에서만큼은 쉽고 편안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예술을 대할 수 있다. 주택가 골목 사이에 적당히 어울릴 줄 알고 사람들의 일상에 교묘하게 스며들 줄 아는 <꿀>에서는 예술과 생활, 예술인과 대중 간의 경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247쪽)

 


    커피는 기호 식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호불호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머신으로 뽑아낸 에스프레소를 넣어 만든 메뉴가, 누군가는 손맛으로 천천히 내려 마시는 핸드드립 커피가 마음에 들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다. 어느 쪽이 더 맛있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다는 것. (271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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