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브
알렉스 모렐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에 대해 옹호하며 추켜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그들이 힘겨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민했을 시간과 과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낮고 얕은 마음으로 어설프게 위로하려던 글을 보면 가끔은 냉소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런 글 따위, 나를 더욱 상처받게 했으니 나는 그냥 오늘 죽기로 결심하자, 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조심스레 알렉스 모렐의 소설 『서바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내일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의 옆에 지금 당장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합시다. 곧 죽기로 한 사람의 사연을 듣다 보니 문득, 그래도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단 더 낫지 않을까요, 하는 조심스런 위로의 말이 무심결에 튀어 나옵니다. 내일이면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저 무관심하게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사연을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괜한 동정이 생겨난 겐지 신기하게도 따뜻한 말을 건네게 됩니다. 겨우 하루 간격의 같은 처지에 있다 보니 상대방의 울적한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은 타인에겐 차마 권하지 못할 자신만의 해결책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죽기고 결심한 사람의 자살을 내일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 만류하게 되는 묘한 심리가 생겨납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살(Suicide)에서 희생(Sacrifice)으로 변한 심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인을 향한 위로의 말을 희생의 말로 바꾸어 스스로에게 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가슴속에 와닿을 만큼의 강력하고 충격적인 어떤 메시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흐릿한 삶 속에서 그만큼의 뚜렷한 메시지를 잘 찾아내지 못합니다. 자살할 생각을 잊게 만들 만큼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을 하는 건 평범한 우리들에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설에선 살려던 자를 죽이고, 죽으려던 자를 살려 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죽이려 합니다. 이 얼마나 뚜렷한 신의 메시지란 말입니까. 그래서 자살하려 했던 인물 앞에 죽음이란 것이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가 됩니다. 스스로가 결정하지 않아도 죽음은 알아서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 주위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고 생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는 이야기를 이 소설에서 합니다.

 

 

    어떻게 죽기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마지막 자유이자 유일한 탈출구일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죽을 수 없게 된다면, 일단은 화가 치밀어 올라 크게 분노할 것입니다. 왜 죽는 것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단 말인가, 하며 신을 탓할 것입니다.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의 오기마저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다가 신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가 삶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런 열정이 바로 앞에 놓인 과제 하나에 집중하게 하고, 차근히 오늘을 살자는 생각을 만듭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급하니 엉덩이를 까서 아무대서나 오줌을 싸지르자, 혹은 야만인이고 뭐고 간에 그냥 눈앞의 토끼를 요리해서 뜯어 먹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바이브』는 자살을 마음먹었던 한 사람이 죽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보이고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살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자살하려던 사람은, 그러지 말라는 어떠한 결정적인 계시가 자신에게 내려오길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보인 이러한 계시가 작위적으로 느껴져 엉뚱함을 만들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의 따뜻한 위로의 상담에서 우리는 자살하지 않아도 될 어떤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듣곤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신의 경우에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어떤 특정 조건일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로 난감합니다. 좋은 의도로 했던 말이 오히려 더 큰 좌절을 맛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죽어버리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나에게 없었던 바로 그것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기억이란 미래와 같다. 계획 없이 불쑥 나타나고, 일단 나타나면 우리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나쁜 건,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들이 점점 더 슬퍼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29쪽)

 


    자기한테만 찾아온 행운 때문에 죄책감이 느껴질 때도 있지. (109쪽)

 


    이 세상에 살아 있어야 이런저런 일들도 일어나는 거란다. (123쪽)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제인.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안 벌어져. 예상치도 못한 일을 당하는 것보단 그 편이 낫잖아. (142쪽)

 


    표시는 그냥 표시일 때도 있으니까. 가끔은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201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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