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들의 저택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가 직접 자신의 소설을 보내주며 소설을 읽고서 짧게라도 감상의 글을 남겨주십사 부탁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이 소설을 받아 들었을 땐 굉장히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을 지목해서 부탁했다는 점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이런 부탁을 한만큼 계속해서 지목한 대상을 감시하고 있을 것 같다는 수상한 느낌마저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였습니다. 그것은 소설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떠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일까요. 저는 한참동안 그 생각에 글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 소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취재하듯 조사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받고 나서부터 소설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하려던 지금까지, 마치 누군가가 저를 미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누가 보고 있나? 누군가가 제 뒤를 쫓다가 때론 가만히 서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 대놓고 저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제 등을 향해 날카롭게 찌르면서 끈적하게 들러붙을 시선을 끊임없이 박아 놓습니다. 저는 평소에 이러한 기분을 쉽게 떨쳐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피로을 느끼며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 피로가 느껴질 때마다 갑작스레 한번씩 뒤돌아보곤 했는데, 정말로 만약 누군가가 뒤에 있는 것이라면 그 대상이 미쳐 몸을 숨기지 못하게끔 빨리 뒤돌아봐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인들의 저택』이라는 한 권의 책만이 'HELP'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난 직후라 그랬던 것일까요. 단순한 착각이나 기분 탓이라 여기며 다시 키보드를 손을 얹고 글쓰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또 다시 이상한 기운이 목덜미를 타고 넘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데 몰두하다 보면 어느 쪽이 진짜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경계선상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면서 가까스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이인들의 저택』을 읽으며, 말그대로 그의 현란한 글놀이에 제대로 놀아난 것 같아 더욱 그리 느껴집니다. 그의 글은 서로 한데 어울리지 못할 글조각들을 어떻게든 짜집기하여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놓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이 마치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헝겊 조각을 모아 만든 패치워크같아 보입니다. 재료의 출처부터가 제각각이라 하나로 만들어진 그 모습이 그다지 조화로워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어색한 기운이 감돌며 기이한 형태의 그림이 된 듯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그렇게 이어붙인 이야기들 간의 경계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정교한 바느질을 통해 계속 이어 붙어져 있는데 이 부분이 참으로 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빠른 전개를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느릿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독자를 지치게 만들기 위한 의도된 장치였을지 모릅니다. 솔직히 그의 소설이 갖는 치밀한 복선과 구성이란 것이 사람을 꽤나 지치게 만듭니다. 



    아무튼 오버랩된 이야기들이 독자의 머리 위를 자유자제로 넘나들며 어느 순간부턴 독자를 대놓고 우롱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부분도 정말로 그렇다고 단정지어 말하기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인데, 이쯤 되면 눈치채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늬앙스를 풍기며 결국 독자 스스로 뭔가를 풀이해낸 듯한 착각에 빠지게끔 유도합니다. 그때 또 다시 미리 잘라놓고 준비해둔 결말을 덧붙이면서 누더기 기운 옷처럼 이야기가 덕지덕지 보태어집니다.



    제가 조사하며 찾아낸『이인들의 저택』에 대한 감상글은 이런 내용의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똑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가장 무난하고 평범한 길을 걸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서술하는 방식에 약간의 차별화를 두어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또 다른 형태의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고 꽤 오랫동안 고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제 뒤에서 저를 향해 다가오는 수상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또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뒤돌아보려 할 때, 저는 잠깐 멈칫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등 뒤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공포를 확인해야만 하는 공포.



    그런데 다행히 제 뒤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역시 착각이었나 봅니다. 여름에 읽는 미스터리 소설은 이래서 좋습니다. 위험한 이야기를 이야기 밖에서 안전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부탁받은 『이인들의 저택』에 대한 감상글은 그런 내용의 글를 한번 써보려 합니다. 아직 단 한 문장의 내용도 써내려가지 않았으나 이런 생각을 하고 방향을 정한 것 만으로도 거의 다 쓴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약간 더 추가해야할 내용이 필요할 것도 같으니 취재와 조사가 필요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써둔 내용을 참고해서 단어와 문장만 조금씩 바꾼다 하더라도 괜찮아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글의 방향이 그쪽으로 향하게끔 조정하고, 키보드에 올려둔 손을 움직여 마침내 글쓰기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뒤를 타고 도는 빨간 색의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무언가가 스르르 목을 감아 타고서 올라오는 듯한 새하얀 느낌. 그래서 뒤돌아…….







    어쩌면 이건 재미있는 스토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방 전체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인물의 고동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58쪽)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챘을 텐데요. (107쪽)



    당신들이 취재하러 온 뒤로 자꾸 준이 생각나네요. 잊으려고 했는데 망각의 문을 억지로 따고 들어오는 바람에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당신들을 원망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렇게 된 바에야 차라리 모든 걸 밖으로 드러내 마음속에 고여 있는 고름을 남김없이 짜내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342쪽)



    "뭐, 추리 동아리라고?" 지역 경찰서 형사는 우리를 수상쩍은 눈으로 쳐다봤어요. "그럼 항상 사람을 죽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겠네. 이번엔 타살을 사고사로 위장한 건가?" (358쪽)



    "작품을 보는 그들의 안목이 부족한 거예요. 솔직히 그들이 쓴 추리소설은 대부분 형편없잖아요."

    (…)

    "그건 독자가 멍청한 거죠. 머잖아 금방 질려버릴걸요. 그건 추리소설 흉내만 낸 거지 추리소설이 아녜요."

    (…)

    "편집자가 형편없는 작가들에게 그렇게 관대하다니 국내 추리소설도 앞날이 캄캄하네요." (394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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