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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선 힘을 가진 누군가가 세상을 움직이며 조종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들의 어두운 작업들이 밝은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밝은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모른 채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두운 세상의 일은 알아서도 안되고, 알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어디든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질 수 밖에 없으니 어렴풋이 그들의 존재를 알 것도 같다라는 짐작과 의심은 할 수 있을지언정 그런 의심을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면 정말 말 그대로 재미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합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어두운 세상의 이야기, 즉 조직과 범죄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궁금합니다. 그들의 세상을 소설로 들여다보는 것은, 앞에서 말한 재미없는 상황이 절대로 벌어질리 없는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알 수만 있다면 더 알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안전한 장치를 두루 갖춘 간접의 경험을 통해 우리들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이 맛이 은근히 중독성이 강해서 어두운 세상의 위험한 이야기가 '재미'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범죄소설은 그런 맛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쓰리 세컨즈』는 경찰당국에서 마약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정보원을 비밀스레 심어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정보원은 조직을 뿌리채 뽑기 위해 조금 더 위함한 작전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지시를 받습니다. 또한 범죄조직으로부터 확고한 신임을 얻고 완벽한 비밀정보원이 되기 위해 흉악한 범죄자가 되기도 합니다. 완벽한 범죄자 연기는 실제로 범죄자가 되면 그만이라는 꽤 멋진 생각을 하며 말입니다.
이렇듯 소설은 마약범죄와 비밀정보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더욱 어둡고 비밀스런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모를 수 밖에 없는 음모란 바로 이런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모에서 빠진 몇몇 인물들이 그 안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고, 그러한 결정 때문에 이야기는 각각의 인물이 뜻하는대로 흘러가지 않게 됩니다. 그런 어긋남이 소설이 흡인력을 갖게 하고 독자의 심장을 긴장감으로 소용돌이치게 합니다. 또한 소설은 이때부터 굉장한 속도감을 가지며 독자로하여금 순식간에 그자리에서 이야기의 끝을 보게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속도감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빠른 전개로 대단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약, 수감, 저격, 폭파, 암살, 경찰, 비리, 탈출 등등의 종합 범죄 선물 세트
한편 소설에서 말하는 범죄가 굉장히 사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그 자리에서 있었던 사람만이 쓸 수 있을 듯한 설정과 묘사들이 압권이었습니다. 실제로 범죄자였고, 그래서 교도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었던 자가 쓴 글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쇼생크 탈출>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액션과 숨막힐 듯한 위기, 그리고 빠른 이야기 전개, 또한 시원한 곳을 긁어주는 듯한 탈출과 반전까지. 거추장스러움과 억지스러움이 전혀 느끼지지 않았던 범죄소설이었다 생각합니다.
가끔은 소설이 세상 사람들에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문제점을 지적해 보기도 하며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세간의 이목을 끌어보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런 노력이 범죄소설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런 노력이 미처 세상에 나오기 전에 작가는 음모에 빠져 결국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될 것입니다. 그러니 작가들이 밝은 세상의 사람이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하는 어두운 이야기를 꺼낼 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런 용기를 갖고 세상에 나온 소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어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쓰리 세컨즈』가 스웨덴 경찰시스템과 교도소 행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어떤 이가 그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뒤늦게 실감했다. 그들은 같은 임무를 수행 중이었고 같은 게임의 일원이었다는 걸. 하지만 서로 다른 편에 서 있었다. 아이나 아내가 있을지도 모를 어떤 사람,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을만큼 오래전부터 거짓말을 했을지 모를 어떤 사람. (1권, 104쪽)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걸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호흡이 멈추던 순간의 그 적막감, 숨죽이며 마지막 숨결이 빠져나가는 순간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1권, 124쪽)
범죄자 역할을 하려면 범죄자가 돼야 하거든요. (1권, 125쪽)
자네, 아직도 이해를 못 하는 거야?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고. 우린 그저 그 결정을 내리게 될 지휘관에게 해법을 제시하는 것뿐이라고. (2권, 130쪽)
끄나풀. 다른 말로 정보원. 위장짐입을 위한 인간도구. 범죄자인데 경찰을 돕고 있어서 경찰에서 죄를 눈감아주거나 뒤를 봐주는 그런 인간들입니다. (2권, 277쪽)
그런 상황에서도 그런 삶을 선택했어. 그게 말이나 되는 거야? (2권, 286쪽)
그들이 자네의 존재를 덮어버린 거야. (2권, 30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