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역할놀이. 롤플레잉 게임. 일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규칙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자기가 해야하는 역할을 그 인물이 된 듯 충실히 행하는 게임이 있습니다. 이런 게임의 진정한 매니아들은 게임 속 대사와 행동, 심지어 채팅까지도 가상의 시공간에 알맞는 말투와 어휘를 사용해가며 완벽히 그 곳에 녹아들어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데 동참하곤 합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들어 그곳에서는 확연히 구분된 또 다른 나를 위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서 아무리 실제와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게임을 한다해도 무의식 중에 성격이 새어나와 표출되어버리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완전하게 분리된 자아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완벽하게 녹아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나토 가나에『고백』에서 이런 식으로 펼쳐지는 게임을 봤습니다. 소설은 여섯 장으로 나뉘어 한 사건을 두고 각 인물이 가졌던 생각과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사건과 이야기 속에서 이들은 완전히 분리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인물이 가지고 있던 기억과 생각이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조금은 엉뚱하게, 혹은 어디로 튀어버릴지 모를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인물들 중에서 분명히 가해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고, 착한 사람, 나쁜사람도 있는데 이런 기준을 임의로 정해서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며 주사건과 관련 없는 일이 사소한 모습을 한 채 숨겨져 있던 것을 발견하고,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그럴 수도'라며 수긍하게 됩니다. 이렇게 설득당하는 기분이 참으로 묘합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그들의 행동에 동의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알 것도 같다 라는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이 생겨납니다.



    이런 느낌은 소설 속 인물들이 생명력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한 권의 소설을 다 읽고도 주인공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구성도 좋았는데, 어떤 연유로 인해 소설 속 인물들이 생각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인물을 만들고 다듬는데 성의가 부족했다는 느낌이랄까요. 반면 『고백』은 인물을 만들어 내는데 정성을 다한 작가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입김같은 것 말입니다. 모든 인물들이 이야기 속에서 빛을 내고 있으며 각자의 매력이 느껴집니다. 시선을 완전히 옮겨가며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TV채널 바꾸듯 손쉽게 잘도 풀어냈습니다.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이면서 대표작이 되어버린 소설.

제 딸을 죽인 범인이 우리 반에 있다며 시작한 고백의 끝은 어디로.



    게임을 언급했던 이유는 소설 속의 인물들,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에게서 당돌한 맛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괜히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극에 치닿는 인물들의 행동이 과민반응같아 보이고 과장되어 보입니다. 아무리 살인사건과 관련되어도 그 정도는 아니다 라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이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소설에서 속도감이 느껴졌고 읽는 내도록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고 봅니다. 일본 학원물 애니나 영화, 소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식의 극적임 말입니다. 또 개성이 뚜렷한 수많은 인물을 만들어 내, 그들의 성격을 두각시켰던 게임을 잘 만들었던 일본스타일의 문화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보고 '게임'이란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고백』의 이야기를 가상의 판타지라고 정해 놓고,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게임을 펼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인물을 선택했을까. 이 중에서 어떤 인물이 가장 재미있을까, 혹은 이야기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역할놀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발칙한 상상이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완전히 그들이 되어서 그들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같이 느끼며,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이야기해보는 게임.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그런 식의 고백을 '게임'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해도 마나미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자신의 죄를 반성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안 후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54쪽)



    착한 일이나 훌륭한 행동을 하기란 힘듭니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질책하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장 먼저 규탄하는 사람, 규탄의 선두에 서는 사람에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아무도 찬동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규탄하는 누군가를 따르기란 무척 쉽습니다. 자기 이념은 필요 없고, '나도, 나도'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게다가 착한 일을 하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니 최고의 쾌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 번 그 쾌감을 맛보면 하나의 제재가 끝나도 새로운 쾌감을 얻고 싶어 다음번에 규탄할 상대를 찾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잔학한 악인을 규탄했지만, 점차 규탄받아야 할 사람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 하지 않을까요? (78쪽)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집단에 속하거나 직함을 얻음으로써 안도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아무 직함도 없다는 말은 자기가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 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은둔형 외톨이'니 '니트족'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버리면 그 시점부터 그것이 그 사람들의 소속이자 직함이 되고 맙니다. 사회 속에서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이라는 자리를 확보한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안심해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 가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거예요. (127쪽)



    능력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센, 그런 놈들이 제일 싫거든. 발명가인 내 입장에서 보면 너는 어디로 보나 인간 실패작이야. (171쪽)



    그런데 세상은 대체 범죄자의 어떤 점을 궁금해 할까? 태생? 내면에 숨은 광기? 아니면 역시 사건을 일으킨 동기일까? 그렇다면 그 언저리 부터 써볼까 한다. (207쪽)



    이 녀석을 죽일까? 살의란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인간이 그 경계선을 넘어왔을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227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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