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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 - 방탕아인가, 은둔의 황태자인가? 김정남 육성 고백
고미 요우지 지음, 이용택 옮김 / 중앙M&B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3대째 세습으로 이어져온 북한의 권력 구도는 그들이 추구하는 체제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내부 사정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남인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고 북한 내 모든 지도층 권력을 끌어모아 확고한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장남 김정남의 존재가 큰 변수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조선시대 태종이 세자책봉에 불만을 품고 왕자의 난을 일이키듯 김정남이 북한 지도층에 그런 난을 일이킬지도 모른다는 전망과 함께, 그렇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김정남을 호위하며 중국에서 김정남을 잡아두고 있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내 북한 전문 기자, 고미 요지가 쓴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는, 김정남과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연을 계기로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과 직접 만나 인터뷰했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기자 입장에서 고미 요지는, 그대로 은둔해버릴지도 모를 김정남을 어루고 달래며 세상에 꺼내놓기 위한 작업을 조심스레 펼쳐보입니다. 아닌 척하며 자극적이고 민감한 질문을 슬며시 해보기도 하고, 그 질문 때문에 갑자기 돌아서 버릴지 모를 김정남의 미세한 반응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김정남이 인터뷰를 통해 말했던 국제 사회에 대한 견해, 그리고 북한의 외교, 정치, 경제 분야에 대한 해법 제시 등은 전문적인 지식과 타당한 근거를 통해 전망하고 예측하고 있진 않습니다. 그저 이 분야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신문 기사 국제면을 주시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남의 육성 인터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북한 지도부의 핵심 인물, 그 중에서도 김정일의 장남이 그런 말을 직접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가치있어 보입니다.
김정남은 2001년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처음 언론에 노출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의 사진이 북한의 황태자라는 이름을 하고 인터넷을 떠돌았으며, 그 사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는 가족과 함께 디즈니 랜드에 가려고 했다고 합니다. 북한의 여권으로는 출입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기 때문에 도미니카 여권을 만들었고, 위조한 여권으로 일본에 가려다 일본의 출입국관리국에 잡힌 것이라고 합니다. 방식은 틀렸지만, 소시민적인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북한의 절대 권력을 쥐고 있었을 것 같았던 북한의 황태자에게 이런 고충이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김정남은 인터넷과 매우 가까운 사람입니다. 고미 요지와 주고받은 150통의 이메일 중에서 하루에 몇번씩 실시간으로 즉시 답장을 보내주기도 했으며, '노코멘트'라는 영어식 한글을 사용하기도 하고, 'ㅋㅋㅋㅋ'라는 인터넷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메일 본문의 내용만을 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개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한국인 친구도 많이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의 한국식 술집에 자주 간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북한 문제에 대한 질문마다 항상 "북한은 개혁·개방을 해야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실제로 정치적인 발언과 국제 사회에 대한 견해를 많이 표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북한의 정치와 권력에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말이 진실인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그가 상당히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 현재 김정남은 북한 정부로 부터 어떤 압력을 받고 있으며 그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남은 고미 요지와 연락이 뜸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김정은의 권력 승계가 완료될 때까지 김정남의 발언 하나하나가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마카오를 떠돌며 은둔 생활을 하는 방탕한 황태자라 할지라도 매우 신중을 기하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고, 떳떳하게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황태자라니. 그의 기구한 인생에 연민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은밀하게 주고 받은 이메일과 첩보작전을 연상케 하는 비밀 인터뷰까지.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은 묘하게 재미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에 근거해 각색한 소설과는 분명히 달라 보입니다. 이메일의 원문을 그대로 담았기 때문에 느껴지는 어색함이 오히려 현장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김정남이 했던 이야기들에서 큰 의미를 둘 순 없을 것입니다. 그는 조심스럽고 중립적인 입장의 묘한 대답만을 하고, 또 민감한 사항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피해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메일와 인터뷰 내용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그 외적인 부분을 통해 인간 김정남을 알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들은 굉장히 흥미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이 책이 이제 세상에 나왔고, 일본을 통해 북한 지도층에서 이 책에 실린 김정남의 발언 내용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북한이 김정남을 어떻게 다룰지, 이 책으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무척 궁금합니다.
김정남은 북한 경제에 관해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경제 파탄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개혁·개방을 하면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축내고 있는 셈입니다"라며 정확하게 분석한다. (9쪽)
빗장을 꼭꼭 걸어 잠근 비밀의 나라로, '이메일'이라는 매우 현대적이면서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 비집고 들어가 이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41쪽)
일본에는 김정남 씨에게 관심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제 감각도 있으시고 외국 생홛도 길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다른 잡지나 《문예 춘추》에 앞으로 수기를 쓰시는 문제에 대해 검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정남 씨에 대한 오해를 풀 수도 있고, 공화국에 대하여 호소하고 싶은 것을 모두 정확하게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 고미 요지 드림. (64쪽)
어릴 때 북한에서 외부인과 철저히 격리되어 살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부친이 당시 유부녀이자 유명 영화배우이던 모친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극비에 부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관저 밖으로 나갈 수도, 친구를 사귈 수도 없습니다. 어릴 적 그 외로움이 아마도 자유를 선호하는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신문 기사는 게재되었나요? 김정남 드림. (128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