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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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미래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200세 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옵니다. 그러다 대규모 화학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20대와 80대 사이에 위치한 중장년층의 인류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인류는 두 극단적인 무리로 나뉩니다. '스타터'라는 미성년자 집단과 '엔더'라는 노년층 집단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이라는 이름의 한 의학미용 회사가 노인들에게 미성년의 몸을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합니다. 부유한 노인들은 거액을 들여 젊음을 빌리고, 가난한 아이들은 그들에게 몸을 맡깁니다. 리사 프라이스『스타터스』는 이런 미래 세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통의 SF소설들이 그렇듯, 『스타터스』도 우울한 미래 세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며, 권력과 부는 특수 계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겐 지금 당장의 배고픔이 급한 일이기 때문에 자유와 평화, 평등, 권리, 행복과 같이 기본이라 여겨지는 당연한 것들이 하찮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보호자가 없는 무지한 아이들은 불합리한 체제 속의 불평등한 계약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설정이 보여주는 불편함은 미래를 그린 소설과 영화 속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그림이라 이제는 꽤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숲을 보호하자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를 배포함으로써 자연보호운동을 실천하자. 이런 운동은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이 틀렸단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환경운동가들이 많은 것을 그것 자체로 부정하고 거부하는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스타터스』에 젊은이의 몸을 대여하고 점유하는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런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한 엔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엔더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타터의 몸을 잠시 빌려서 사용합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저는 이런 행위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방법들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을 선택한 것 같급니다. 이 모습이 매우 이기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발생한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을 합의하에 금전으로 보상하려는 뒷처리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체를 렌탈해줬던 스타터는 그 엔더에게 마음을 열고 순수했던 의도만을 이해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갑갑할 노릇입니다. 역시 자본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일까요.



    그런데 한편,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소설에서 세대차이에서 오는 계층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모습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이려 했단 생각이 듭니다. 중간층이 없어져 소통의 끈이 끊겨버린 세상에서 결국 이들이 동시에 추구하려는 세상의 모습은 하나라는 것을 말합니다. 얘나 어른이나 같은 것을 즐기며 같은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세대간의 격차는 좁혀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없는 무언가, 그러니까 자본의 힘을 이용한 선심보이기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 소설 속의 엔더들에게서 경험에서 우러난 진지한 대화와 깊이있는 사색, 현상에 대한 통찰력 같은 지혜가 보이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스타터들에게 엔더가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면 조금 더 훈훈한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스타터나 엔더나 외모가 같다면 완전히 '같을 수 있다'라는 것을 보임으로서 계층간의 벽을 허물기 위해 작가가 의도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봅니다. 혹은 괜히 이 모든 것을 복잡하게 해석하려는 저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렵고 복잡한 듯해 보이는 이야기를 했지만, 소설『스타터스』는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또 소설로 말하려했던 것은 단순히 미래의 모습 보여주기에 그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몸을 빌려서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극적인 소재를 속도감있게 풀어쓴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는 식의 독특한 상상력을 동원한 미래 모습보이기. 그리고 사춘기 십대 소녀의 알쏭달쏭 사랑의 감정 배우기. 환상적 신데렐라 판타지 이야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잘 버무려 놓았단 생각입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에 적절한 반전까지 SF영화 한편을 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기에 좋아 보였던 소설입니다.









    곧, 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릴 것이었다. 곧, 내 몸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거였다.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그런 꿈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란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하지만 정말 나는 꿈을 꾸는 중이었다. (74쪽)



    신데렐라가 그 멋진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 신나게 즐겼던 밤에, 왕자에게 고백하려고 한 적이나 있나? 오 그런데요 왕자님, 저 마차는 제 것이 아녜요, 전 실은 더부살이 하고 있는 지저분하고 가여운 맨발의 청소부일 뿐이거든요. 이런 고백을 하려고 생각이나 했느냐 말이야. 아니지. 신데렐라는 그저 순간을 즐겼잖아.

    그리고 나서 자정이 지나자 조용히 사라졌을 뿐. (145쪽)



    그 애는 내게 작별 키스를 했다. 전과 같지 않았다. 죽음의 무게처럼 우리의 입술에 달라붙은, 내 거짓말의 무거운 짐이 얹혀 있었다. 그 애는 떠났다. (331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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