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용돌이쳐.
- 내 할 수 있는 것은.
- 바라볼 밖에.
일본의 옛 시조의 한 형태로 '하이쿠'라는 것이 있습니다. 5 · 7 · 5조 17음으로 이루어진 단시로 계절을 상징하는 구절이 있어야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걸 막기 위해 한 단락을 쉬어줘 강한 영탄이나 여운을 줘야 한다고 합니다. 비록 한문을 이용한 17음은 아니지만, 지금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를 읽고 난 느낌을 하이쿠로 표현하자면 바로 위에 두서없이 쓴 글귀와 같을 것입니다.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흡인력,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오는 무대 장악력, 긴다이치의 추리에서는 손 놓고 방관할 수 밖에 없었던 허탈함, 그리고 봉건시대의 답습과 그에 따른 거대한 음모 앞에 스스로가 나약해지는 느낌까지,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하게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오오, 뭐란 말인가. 뭐라 말할 수 없이 무섭다. 이 미치광이 같은 재주. ……오오, 대지가 흔들린다. 바다가 불탄다. 하늘이 번쩍인다…….(305쪽)
긴다이치 코스케는 <혼진 살인사건> 이후, 전쟁에 파병되어 해외를 떠도는 신세가 됩니다. 그때 만난 전우 치마타가 죽으면서 남긴 말을 따라 옥문도라는 섬에 오게되는데, 옥문도의 사람들은 지주와 소작농의 모습을 띈, 선주와 어부들이 모여사는 매우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긴다이치는 섬의 역사와 마을 사람들간의 관계를 알아가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죽은 전우가 마지막에 남겼던 묘한 말들이 그대로 현실이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기에 이릅니다. 과연 긴다이치 코스케는 명탐정의 이름으로 이 연쇄살인 사건의 진상을 명쾌하게 풀이할 수 있을까요.
코스케의 목소리에는 깊은 비통함이 서려 있었다. 마술의 속임수를 간파했다고 승리를 뽐내며 기뻐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331쪽)
이 소설은 참 시적입니다. 소설 속의 소제목에서도 그런 시적인 표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구 아래서 우는 귀뚜라미여, 밤에는 모든 고양이가 잿빛으로 보인다, 한집 옆방에 유녀도 잠든 모습 싸리 꽃과 달. 이런 표현들이 옥문도라는 섬을 음침하고 요사스럽게 만들고, 해무가 뿌옇게 끼여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해 사건을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끔 하는 역할을 합니다. 총을 들고 땅땅거리며 싸움을 하는 시대이면서 상당히 옛날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봉건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가려고 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그려주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또 사건 풀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니, <옥문도>는 시를 닮은 소설이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옥문도>의 시점은 전지적인 입장이지만 긴다이치의 머릿속과 시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제한적인 형태를 띕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이지만, 코스케는 어디에 있는지 콧배기도 보이지 않다가 마지막에 수수께끼 풀이만 하고 사라졌던, 여느 시리즈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반갑고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망의 첫 등장을 그린 <혼진 살인사건>과 비교해서도 <옥문도>에서 보여준 긴다이치의 언행은, 기념비적인 첫 등장 작품보다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옥문도>만한 소설이 없겠다 싶습니다.

아, 그것이었다. 지금 긴다이치 코스케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도 그 문제였다. 저것은 범인의 단순한 허세일까. 소설가가 독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억지로 악독한 장면을 생각해 낸 것처럼 이 사건의 범인도 그저,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만으로 무참한 정경을 피와 살로 그려냈던 것일까. (118쪽)
작가와 독자의 두뇌싸움에 있어서 추리소설의 페어플레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간혹 반칙같은 반전을 선보이는 작가의 기교에 독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옥문도>는 이런 페어플레이 법칙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변화구가 아닌 직구로 승부하고 있습니다. 칠테면 쳐봐라는 식으로 눈 앞에 단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 승부를 펼치고 있는 대립은 작가와 독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서 긴다이치 코스케와 한 인물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이 펼치는 두뇌싸움은 매우 볼만했으며, 진범 뒤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음모에는 순순히 무릎 꿇어야만 했습니다. 옛 일본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 시적인 표현들까지 있었으니, 제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말했던 5음의 시구, '바라볼 밖에.'라는 말로 여운을 남긴 것입니다. 하지만 충분히 정직한 승부였다고 여겨집니다.
긴다이치 씨, 세상에는 당신 같은 사람이 생각지도 못할 만큼 무서운 일이 있다네. 그건 한 마디로 보통 사람의 상식 따윈 미치지 못할 만큼 무서운, 괴상한 일이야. 미치광이…… 정말 그야 말로 미치광이 같은 상황이야. 하지만…… 지금은 말 못하네. 언젠가 다시 당신에게 밝힐 날도 있겠지만 지금은 말 못하네. 지금은 아무 것도 묻지 말아주길 바라네. 알겠나, 물어도 소용없는 일이네. ……오오. (105쪽)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짜증나면 짜장면. 돈들고 손내놔.' 저는 이런 식의 언어유희를 좋아합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이런 언어유희의 맛이 있습니다. 당연히 <옥문도>는 시가 중요한 키가 되었던 만큼 언어유희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뿐만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언어로 장난치는 작가의 재미있는 표현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볼 때, 작가와의 궁합이라는게 중요합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저와 궁합이 매우 잘 맡는 것 같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수수께끼에 정답을 제시해보기는 커녕, 단서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던 멍청한 독자라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그저 멍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