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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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시대, 일본 역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이이 다이쇼군에 임명되어 막부를 개설한 1603년부터 15대 쇼군 요시노부가 정권을 조정에 반납한 1867년까지의 봉건시대를 말합니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가끔 이 '에도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설 속 인물이 주로 '그때는 그랬었지'하는 회상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식의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등장하곤 했었는데요, 그래서 이 에도시대가 과연 어떤 모습이길래 이렇게나 일본 작가들은 이 시대를 회상하고, 그리워하며, 때로는 아쉬워할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이 검은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혹은 잊어버린 나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네. 그래서 함부로 세상에 나오면 안 되지. 나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 말게. 나쁜 마음은 누구든 가지고 있는 법이니. 그저 우리는 항상 그런 마음을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담아 두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살아갈 따름이지. 이 검은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네……. (241쪽)



    미야베 미유키<말하는 검>은 이런 에도시대를 이야기하는 시대소설입니다. 이 책은 <길 잃은 비둘기>, <가마이타치>, <섣달의 손님>, <말하는 검> 이렇게 4개의 단편으로 엮인 단편집으로 1991년에 발표했다지만 실제로 초고는 1986년에 완성한 것이라고 하니 미야베 미유키의 데뷔작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초기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나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가 살짝 세련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대단한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그녀를 향한 팬심으로 이런 부족한 모습들을 모두 용서하며 볼 수 있었고, 그 부분을 감싸안으니 귀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단편 중에서 <길 잃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연작의 형태를 보입니다. 나이차가 꽤 나는 3남매, 로쿠조, 나오지, 오하쓰가 바로 그 등장인물들인데요, 두 이야기 모두에서 이들의 모습은 정말로 앙증맞게 그려져있습니다. 로쿠조와 나오지, 이 두 형제만 등장했었다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텐데, 16살 소녀인 오하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자칫 밋밋하고 덤덤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오히려 주위 등장인물들과 시대의 모습들까지 모두가 앙증맞아 보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앙증맞음 속에서 에도시대 소시민들의 생활상과 사고방식같은 것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소곤거리며 곁눈질하고, 쉬쉬거리며 조심스러운 일본 문화의 단면들까지 말이죠.



    돌은 흠집이 생겨도 돌이지만, 옥은 조그만 흠만 생겨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지요. (202쪽)



    아무래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니 만큼 오하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오하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싸이코메트리 현상을 경험하는 영험한 아이입니다. 시대가 에도시대이니 만큼 미스터리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쉬우면서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싸이코메트리, 한마디로 말해서 신 기가 있는 아이를 가져다 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하쓰의 이런 특별한 능력이 미스터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미스터리한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했습니다. 오하쓰의 능력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시작'이 되었지만 필살기 하나만 익히면 모든 게임이 '끝'나듯이 싸이코메트리 하나로 사건의 전말과 범인까지 모든 것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는 좋았는데 결말이 조금 당연했다고나 할까요. 미스터리한 소설에서 너무나 강력한 주인공의 존재는, 일단 약부터 줬다가 병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형태라 그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검은 일종의 마력을 가지고 있지. 검호라 칭송받는 이들은 그 마력을 길들여 제 것으로 만든 달인이다. 하지만 그만한 힘을 가지지 못한 자는 검의 힘에 정신을 빼앗기는 게야. 검과 사람의 주종 관계가 뒤바뀌는 셈이지. (75쪽)



 

    그렇다보니 이 야이기는 독자들이 추리할만한 여지를 남겨놓지않기 때문에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미스터리하기는 굉장히 미스터리했습니다. 4개의 단편 중에서 가장 괜찮았던 <말하는 검>의 간단한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제목 그대로 검이 말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때요, 굉장히 미스터리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시대에 검을 만드는 사람과 검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무법천지의 강호의 이야기와 같아서 의리와 배신과 같은 은근한 멋과 풍류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단칼에 지나가는 행인을 벨 수 있었던 그런 시대의 멋(?)말입니다.



    똑똑히 기억하거라. 내 목숨은 끊어져도 이 칼은 남는다. 하늘 아래 영원히 머물며 나를 알아주지 않았던 이 세상 모든 것에, 너 같은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속 피를 부르리라. 넌 앞으로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야. (202쪽)



    미야베 미유키는, 에도시대가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고, 그 사이에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서로 도와가며 살았던 이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말하는 검>을 통해서 그녀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본의 에도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긴한데,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길 원한다면, 이 소설이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의 팬이라면 그녀의 초기작이며 그녀의 에도시대물의 출발점인 <말하는 검>을 필수도서로 여기며 군말없이 읽어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하나로 통일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섬세한 세공품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설켰단다. 그리고 평소에는 누구나 그 겉면만 쓰고 있지. 내 말뜻을 알겠느냐? (65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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