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훤칠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 놀라운 스펙, 어마어마한 연봉, 성공과 부, 권력. 그런데 이 같은 것을 보고 부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부러움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가상 현실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이 되어서 한번 쯤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떤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과감하게 몸을 던져 지금과 완전히 다른 인생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며 쉽게 단념하곤 합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에서 벤은 고액의 연봉에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부유한 뉴요커인 인물입니다. 두 아이와 부인이 있는 가정의 가장으로 앞에서 말한 '그 사람'과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꿈인 사진사가 되지 않았다는 후회가 가득한 인생을 살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한 매일을 살아가고 있으며, 아내인 베스와도 거의 대화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웃인 게리가 아내와 불륜관계란 것을 알고, 홧김에 그를 살해합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그는 인생의 절벽 끝자라가에 메달려 있는 기분으로 살아가다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으로 인해 이제는 본격적으로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희망도 없다, 살아갈 의미도 없다, 그리고 살아 갈 수도 없다고 여겨야 할 벤은, 뜻밖에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여 자신이 죽인 게리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바로 자신이 그 토록 바래왔던 사진사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물질적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가짜일 뿐이고, 언젠가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등에 짊어진 건 그 물질적 안정의 누더기 뿐이라는 걸.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소멸을 눈가림하기 위해 물질을 축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축적해놓은 게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결국 인생의 문은 닫힌다. 언젠가는 그 모든 걸 두고 홀연히 떠나야 한다. (251쪽) 


    벤은 살인을 저지른 뒤, 게리의 시체를 숨겨서 완전 범죄를 성립시킬 기회를 얻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벤은 자신의 가짜 죽음을 만들어 내고 게리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합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결정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살인을 덮기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하나 밖에 없었던 선택지가 아닌, 많은 선택 중에서 하나를 고른 것입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친구 빌의 조언과 상사 잭의 조언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였습니다. 누구의 조언이 당연히 옳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벤의 입장에서는 반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벤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잭의 조언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인생도 완전히 도로에서 비껴나갔다고 여긴 것인지, 벤은 사진사 게리의 인생을 살아보기로 합니다. 


    "그래서 어쩔 건데? 앞으로 삼십 년 동안 다른 삶만 꿈꾸며 살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내 말 잘 들어, 친구.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야. 자네가 현재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돼.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지금 가진 걸 모두 잃게 된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을 거야. 세상 일이란 게 늘 그러니까." (119쪽) 


    "이제 와서 가장 참기 힘든 게 뭔지 아나?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는 거야. 변화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거나 다른 생을 꿈꿀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리란 걸 알면서도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인 양 살아왔다는 거야. 이제는 더 이상 환상조차 품을 수 없게 됐어. 인생이라는 도로에서 완전히 비껴난 것이지." (49쪽)
 


    게리의 삶을 얻고, 숨어지내야만 하는 벤은 항상 조심스럽게 지냅니다. 최대한의 인간관계를 자제하고 적은 돈으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꿈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그의 사진을 인정 받고 싶다는 꿈 말입니다. 몬태나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을 때,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습니다. 그건 책을 읽고 있는 저 또한 묘하게 그렇게 느꼈습니다. 대리만족이라고 해야할까요. 좀 유별난 방법을 택하긴 했지만, 자신을 찾아 나선 벤의 모험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겨졌습니다. 잘 되었으면 좋겠고, 또 왠지 잘 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벤은 너무 일이 잘 풀려도 문제가 생기는 상황입니다. 숨어 지내야만 하는데 사진으로 갑자기 유명해 지는 일이 생기면 도피 생활이 들통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역시 '소설'은 그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자유, 그 텅 빈 지붕과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 밖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란 끝없는 무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영역을. (271쪽) 


    진정한 자유를 얻은 듯 하지만, 벤은 스스로를 구속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좋아하는 직장을 얻게 되고,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그것들이 자신을 또 구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얻었구나 싶은데, 이제는 그것을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여실히 보여준 대목이었습니다. 또 옛날 생각이 나고, '그때 그랬으면' 이라는 후회가 생깁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지나간 인생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벤의 인생은 두 번이나 크게 불타서 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지만, 또 그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자라서 새싹을 튀우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난다 한들 무엇인가로 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벤의 본성은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꿈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는 것이 새싹을 튀울 원동력의 밑거름이 되어, 어찌하든 흘러가는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잘 나간다고 달리지 말고, 못 나간다고 투덜대지 말라,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선택하는 것에 따라 인생이 어떤 모양새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선택에 의해 지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가야할 지 그것만 알고 있으면 어떤 형태로던 간에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단 겁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늘 두 가지 선택의 순간이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후회할 가능성 역시 늘 존재한다. 첫 번째 순간은 뷰파인더에서 우리를 노리는 사건이 벌어질 때다. 두 번째 순간은 촬영한 필름을 모두 현상 인화하고 효과가 떨어지는 것들을 버려야 할 때다. 그 두 번째 순간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이미 때늦은 순간이다. (133쪽) 


    그런데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유턴도 있고, 후진도 있습니다. 인생에서도 그런게 있으면 참 좋을 것인데요. 실제론 기름의 양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뱅뱅 돌아서 가다보니 결국 기름이 다 떨어져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연비 좋은 차를 태어나자마자 몰고 다녔다면 또 금방 그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하잖아요.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헉, 시발 쿰."을 외치며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현실같은 꿈에서 된통 당해봐야 한다는 것인가요. <빅 빅처>의 벤이 소설 막바지에서 꿈에서 깨어나며, 이 스펙타클한 꿈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하고 새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 있다면, 그때 벤은 무엇을 느꼈으며 그때 벤의 가슴에 품고 있던 그 씨앗은 과연 발아할 기회를 갖게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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