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11.가을 - 33호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청어람M&B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한국의 추리소설? 보통 추리소설하면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을 떠올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추리소설이? 물론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생겨난 고정관념일지 몰라도 단단하게 꽉 자리잡힌 그것 때문에 서점을 가서도 영문 소설과 일본 소설 코너만 서성거리기 일쑤입니다. 2년 전에 추리문학관을 갔습니다. 그리고 김성종 작가님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대표작이라고 하는 한권의 추리소설을 읽어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위치는 아니지만, 마치 신문 귀퉁이에 짧게 나와있는 가쉽기사를 읽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추리소설은 제가 가장 즐겨찾는 최고의 취미지만, 그 이후로 국내의 추리소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계간 미스터리>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번에 나온 가을호를 접할 수 있게 되는 행운을 었으니, 이것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특집 기사로 크게 할애한 '다시, 김내성'을 필두로, '번역가 정태원 추모' 특집 기사, 미스터리 신인상 당선작인 홍성호의 <위험한 호기심>, 국내 단편 두작품으로 정석화 <킬 힐>과 정명섭 <우리 동네 살인마>, 그리고 청어람 장르작가 특별전 김이제의 <막다른 골목>, 2011 여름추리소설학교 참가일기와 해외 단편 로로시 세이어즈의 <알리바바의 주문>까지, 실로 엄청난 읽을거리가 담겨져 있는 추리소설 잡지였습니다.


특집 기사 '다시, 김내성'을 통해 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국내 추리소설 작가 1호라고 할 수 있는 김내성님의 추리소설 사랑과 그 때문에 마음 속에 품을 수 밖에 없었던 한(恨)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일본과 국내를 오고가며 앞으로 국내 추리소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모습들에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자잘한 잔지식들도 늘어난 것 같아서 무척 유익한 기사였습니다.


탐정소설의 연령은 겨우 1세기를 좀 넘어섰을 뿐이다. 탐정소설의 선조(先祖)인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모르그 가의 살인(The Murder in the Rue Morgue)>이라는, 실로 역사상 최초의 탐정소설을 발표한 것이 1814년의 일이니까, 금년에 들어서 115세를 맞이한 계산이 된다. (다시,김내성, 38쪽)


그러면 탐정소설은 언제까지나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는 것으로만 능사를 삼고 그 피상적인 객관묘사에만 그쳐야 하느냐? 종래의 탐정소설은 그랬으면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각국에서 제작되어 나오는 탐정소설은 태반이 다 그렇다. 작품의 중요 주제는 어디까지나 범인과 탐정이 기발한 트릭(위계 僞計)에만 치중해왔고 문예작품적인 주제인 인간성의 오묘(奧妙)에는 모두가 다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쓸쓸하고 서글픈 일이 나니냐? 인간성에 제거되어 있는 탐정문학의 장래를 생각할 때, 나는 무한한 고독감을 느끼는 것이다. 탐정소설로 인간성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할 수는 없느냐? 이것이 나의 불타는 야망의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 조건적인 애로와 난관을 어떻게 하여 극복할 수가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하면 탐정소설의 조건을 준수하면서 문예작품적인 것을 주제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일까? (다시,김내성, 11쪽)


위의 인용문을 얼핏보면 본격류 추리소설에 대한 회의적이고 자조적인 푸념으로 보입니다. 결국 추리소설이 타의에 의한 문학성을 인정받고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한 방법을 위한 고민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추리소설의 문학성에 대한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저 스스로도 지하철을 타고갈 때 혹시나 주위를 의식하고 책의 제목을 가리진 않았을까 되새겨 보게 만든, 가시가 돋혀있는 따가운 글이었습니다. 결국 스스로에게도 추리소설이 떳떳하지 못하고 낮은 수준의 소설이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돌파구로 김내성님은 인간성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문득 요즘 작가들은 어떤 돌파구를 마련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역사소설의 형태를 띈 추리소설이 해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또 꽤 오래전부터 시도되었던 것이기도 할 테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시도가 이어지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두번째 특집 기사는 번역가 정태원님을 추모하는 기사입니다. 번역가 정태원, 서점의 영미 추리소설 코너에서 아무책이나 10권을 집어보라고 하면 무조건 그의 이름이 안에 들어있을 정도로 유명한 분입니다. 마지막 번역작이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라니. 아아,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분의 업적은 단지 외국의 서적을 번역했다는데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번역했던 수많은 책들은 지금 추리소설을 즐기는 팬들과 추리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책들이기 때문에 정태원님은 번역가인 동시에 추리학교 선생님이라고 여겨집니다.


"결국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한 만큼 추리소설이 나를 먹여 살렸다고 할까. 많은 출판사에 추리소설 기획을 해주었고, 번역도 많이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것만큼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지금 나 못지않은 마니아들을 보면 그들이 자랑스럽다. 언젠가는 우리 추리소설을 이끌고 나갈 사람들이다." (코난 도일 <공포의 계속> 작품 해설에서 - 정태원) (누구보다도 추리소설을 사랑했던 사람을 보내며 - 박광규, 291쪽)


세번째 특집 기사는 여름추리소설학교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꿈과 같은 모험이 현실 세계에서도 있었다니 아니, 이런 학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서도 몰랐을 것입니다. 매년 있는 행사라고 합니다. 과연 내년에도 추리학교가 개교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추리문제를 내고 힌트를 제공한 뒤 서로 불타는 눈빛을 내뿜으며 추리대결을 펼쳤던 강연을 시작으로, 추리작가님들과 추리협회 선생님들의 강연, 그리고 뒷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기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 휴양소의 추리학교에서 갑자기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국내 추리의 대가들이 모인 그 자리는 급기야 혼란에 빠져드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명탐정이 한 사내를 범인으로 지목하기에 이르른데……. 물론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제 상상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와 같은 추리학교는 상상속의 동물, 기린과 같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 특집 기사에서 저는 신세계를 봤습니다.


위의 특집 기사 외에도 국내외 단편들과 미스터리 신인상 작품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계간지는 전체적으로 꽉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간 미스터리>는 저에게 신세계를 보여줬고, 추리소설을 더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뿌리를 알게 해주었고, 집이 어디인지 가르쳐 줬습니다. 앞으로도 무한한 발전을 이어갔으면 좋겠고 그럴 것이라 믿으며, <계간 미스터리>에서 보여준 노력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추리소설을 사랑하고 읽어 나갈 것이란 희망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추리소설 입문자들이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잡지다운 모습으로 사진과 그림을 많이 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김내성'에 실렸던 작가 김내성님의 속마음을 '다시' 보며 글을 마칩니다.


자기의 작품을 아무리 세상에 내놓아도 평 한마디 받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고독한 것은 없다.
태작이라도 묵묵, 걸작이래도 잠잠- 이것은 작가로서의 고독을 넘은 하나의 비애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훌륭한 탐정문단을 가진 내지(內地) 문단을 그리워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자기가 영국이나 미국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恨) 해보는 적도 있다.
탐정작가여, 어서어서 나오라! 그리하여 우리 조선문단으로써 하나의 훌륭한 탐정문단을 가지도록 하라! (1939년 8월 4일- 박문(博文) 11호) (다시, 김내성,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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