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에 대하여 - 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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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날,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전부인 아이들을 보내고 오열하는 나와 같은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었다.

미안해했다.

열심히 일한 자,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예의라곤 없는 작업 현장에 목숨을 잃어가는 세상!

그저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미안해했다.

자신의 젠더 정체성으로 인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이들을 보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현실에 미안해했다.

입시지옥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를 보면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다른 아이들 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에,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미안해했다.

그 오래전 일제의 만행에 고통받던 분들이 아직도 외치고 있는 현실에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나라가 해준 게 뭔지 미안해했다.

망가지고 있는 환경에 아이들의 미래를 언제나 걱정하고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북금곰을 보면서 미안해했다.

그런데

정녕 내가 미안했던 건 맞는 걸까?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에

그저 안쓰럽다는 연민의 정만 가졌던 것은 아닐까?

불안정한 고용의 형태는 나랑은 멀잖아! 하고 외면하지는 않았나?

젠더 감수성으로 고통받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그건 당신들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 아니겠냐고 이해한답시고 눈 감지는 않았나?

제대로 된 교육이 뭔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늪에서 아이를 구하기는커녕 아주 악랄한 양면성을 보였던 것은 아닐까?

왜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만 우리가 사과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미안함은 어디로 간 것일까?

북극곰의 터전을 뺏었다지만

난 오늘도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고 과다한 음식물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것일까?

정의가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정의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른, 상황에 따라 그 정의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 그걸 실천하는 용기!!

그게 시대가 안고 있는 고통에 대한 미안함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이러면서도 내 친구가 산 삼성 갤럭시 노트 20 울트라를 보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

정말 세상에 대한 미안하다는 소리나 말지....

이렇게 또 나를 향한 잔소리를 한 권 읽었다.

자꾸 잔소리를 듣다보면 바뀌겠지?

다음 핸드폰은 삼성이 아니라 좀 더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회사의 제품으로 바꾸는 지성을 갖춘 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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