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 - 자녀 성교육부터 데이트까지, 어물쩍 넘어가지 않으려면
김경아 지음 / IVP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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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우리집에서 모종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나와 아내, 대학에서의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친 큰 아들과 동갑내기 교회 여사친, 교회에서 청소년부를 담당하고 계시는 강도사님까지 총 5명이 5번 모임을 가지면서 이야기한 주제는 '성(Sex)'. 20대초반부터 40대후반까지 연령폭이 넓고 가족이 포함된 구성원으로 제대로 솔직한 대화가 될지 확신이 안 섰지만 결과는 예상외로 좋았다. '어, 대화가 되는데?' 기본적인 것부터 꽤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질문과 대답, 생각과 고민들을 나눴다. 건강한 가정을 준비하려면 성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다는 기치 아래 자발적으로 모여 나눈 이야기들은 재미있었고 깊었다. (그러고보니 녹음만 해놓구선 아직도 정리를 못하고 있구나.)

며칠전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 책을 손에 넣은 뒤 아내가 슬쩍 앞부분을 먼저 읽기 시작하다가 놀라며 이야기했다. "지난번 속궁합 얘기 나왔을 때 우리가 한 얘기랑 이분이 하신 얘기가 거의 같아요!" 그랬나보다. 뭐라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랬을 것 같다. 결혼 20년차를 막 지나고 있던 우리 부부가 느끼고 생각했던 부분이 그랬다. 계속 배워가고 변해가고 좋아지는 관계의 중요성.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공감하고 끄덕이게 되던 부분들이 있다. 먼저는 자기를 알아가는 것, 자기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 부모 혹은 어른과 자녀가 그리고 사랑하고있는 이들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이런 과정의 전제로 그리고 결과로 사람을 이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라면 성적 존재로서의 나와 아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중요한 부분인 건 어쩌면 당연할텐데, 성과 관련된 부분은 마치 특별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신비한 지역인양 다루거나 꺼리거나 했던 건 아닐까.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주목하며 읽은 건 저자의 이야기, 50대를 지나고있는 여성과 어머니로서 계속 변화하며 성장해가는 그녀의 이야기다. 저자의 표현처럼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세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떳떳하고 건강하게 인정하고 표현할 수 없었던 과거를 돌아보며 풀어내는 이야기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너라는 우주를 만나> 라는 책에서 셋째를 입양한 이야기로 먼저 만난 저자는 그렇게 입양 교육 강사 활동을 하다가 더 근본적인 고민을 안고 공부를 시작해 현재 성교육 강사로 활동중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저자의 고민과 공부 과정이 잘 드러나있다. 게다가 그 공부의 흔적들을 주(미주)와 참고도서 목록으로 공개하고 함께 공부하자고 초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미 갖고 있는 책,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 외에 본문에서 멋지게 인용되고 있는 책들 몇권이 새롭게 장바구니로 들어가 이후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 같다.

저자가 밝힌 이 책의 의도와 기대가 여럿 있다. 그 중에 중요한 한가지는 '사회와 교회를 이어 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과학으로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과 사회적 현상을 신앙 안에서 제대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교회를 돕고자 한다. 성이라는 주제 자체가 교회에서 거북하고 민감한 주제인데 동성애와 젠더 등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교회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까. 하지만 진지하게 책을 읽다보면 정직한 부대낌과 고민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만하면 됐다는 지금의 나와 우리의 모습에 소외되고 차별 받아온 이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교회가 성을 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조금만 거리를 떼고 보면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보인다. 전통과 성경에 기대며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에 갇혀 역사와 해석을 통과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 같은. 이 책에서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있는 주장들을 비교적 공정하게 소개하고 있다. 외면하거나 무턱대고 단정하기 전에 성실한 학생의 자세로 이 책을 읽어보자 교회를 위한 성의 기본서로. 도리어 이 책의 약점이라면 예상보다(?) 너무 얌전하고 조심스런 글로 읽힌다는 것이다. 조금 더 도발적이어도 좋지않았을까? 아니다. 기본서로 교과서로 사용하랬으니 이 정도가 좋겠다. 우리 집도 이 책을 필독서 삼아 아내와 피끓는 아들 둘과 함께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대화의 시간을 좀 가져봐야겠다.

'그래서' 아직도 저자가 자위에 대해서는,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는, 낙태에 대해서는 그리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가?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지 않으니 직접 읽어보시길 권한다.

뱀발.
이 책에서는 등장인물 중 가명을 사용할 경우(승호라는 친구처럼) 이름 앞에 '*' 표시를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표지의 제목 앞에 별이 달려있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렇게 생각하며 혼자 배시시 웃어본다. 그 별은 표지 컨셉을 위한 조금은 촌스런 꾸밈장식일 수도, 중요하다고 매김하는 수업시간의 강조의 별표일 수도, 어쩌면 성과 관련해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여러 주제들을 대신하는 만만한 가명 표시일 수도 있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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