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알 로봇 날마다 그림책 (물고기 그림책) 18
남강한 글.그림 / 책속물고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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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알 로봇’ 남강한 글. 그림 (책속물고기, 2014. 5. 5 출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멋진 아빠이야기

김세희(그림책 연구가)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 제 집 자랑을 하는 걸 보면, 엄마, 아빠, 동생, 강아지, 고양이 별별 것들을 다 이야기한다. 급기야 어른들은 언제 갖다버릴까 때만 기다리고 있는 오래되고 이상한 물건까지 자랑거리로 등장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그게 뭔지 궁금해서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이 그림책 속 아이들도 누가 가장 멋진 아빠를 두었는지 자랑하다가 한 아이가 들려주는 엉뚱하고 재미난 아빠 이야기의 환상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어린이날의 뒤풀이

어린이날을 맞아 부모들은 자녀에게 로봇이나 장난감을 골라 선물하느라 분주하다. 아이들도 이참에 어떤 것을 부모에게 주문할까 나름 고민하면서 가슴이 부풀어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 유행이라는 상술이 보태지면 아이들의 여린 영혼은 흔들리며, 부모의 사랑이 이를 채워주지 못하면 마음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으로 채워줄 자신이 없는 부모들은 무리를 해가며 아이에게 비싼 선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이 그림책은 5월 5일 어린이날에 출간되었다. 작가는 첫 장면부터 얼굴은 안 보이고 몸만 보이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로봇과 장난감을 부각시킨다. 다음 장면에도 아이들의 팔만 나오고, 계속되는 여러 장면에서도 로봇과 장난감 자동차와 비행기만 보인다. 단지, 글 속 아이들의 목소리로 아이들이 모여 각자 자기 아빠가 사준 선물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 한 아이가 아빠가 마법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알 로봇을 내 놓는다. 이 알 로봇은 해가 갈수록 튼튼한 다리와 팔을 갖게 되어 어떤 로봇도 이길 수 있는 멋진 알 로봇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알 로봇은 성장과 변화를 동반하는 진행형 스토리까지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그 아이(이하 주인공)의 황당한 알 로봇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상상력에 압도된 아이들

영화나 TV를 보며 저 이야기는 가짜라고 생각하면서, 또 입으로는 ‘동화 같다’라고 하면서도 귀와 눈을 계속 빼앗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짜 이유는 이야기꾼의 한바탕 마당극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인은 너나없이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살면서 잠시라도 이야기를 통해 환상 세계로 떠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유아기부터 매일매일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로봇이나 장난감이 아니다. 아이들도 자신들의 잠재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잠시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를 원한다. 아이들은 답답한 현실세계 속에서 주인공의 알 이야기를 다소 황당하다고 느끼면서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어떤 비싼 선물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주인공은 아빠를 알 로봇 제조자에서 알 로봇 자체로 만들어 버린다. 아이들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믿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 아빠의 알을 닮은 모습이다. 아빠는 알에서 태어나 알하고 똑같이 생겼으며 계속 변하고 있어 “일 년 전보다 더 알처럼 변했고 내년이면 완전히 알이 된대”라는 주인공의 말에 아이들은 압도되어 버린다. 주인공은 아빠의 대머리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 속에 알맞게 녹여낸 것이다. 게다가 알 판매대에 붙인 알 로봇의 그림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부추기는데 한 몫 하면서, 아이들은 알판 속 알 들의 먼지를 터는 아빠를 “마법을 써서 알 로봇을 만드는 중”이라는 주인공의 말을 믿게 된다.

특별한 아빠와 아들

주인공의 아빠는 트럭에 알판들을 싣고 팔러 다니는 사람이다. 그는 비록 어린이날 다른 아빠들처럼 비싼 선물을 해 줄 수는 없었지만, 아이에게 상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충분히 선물한 아빠인 것은 틀림없다.

주인공이 친구들에게 자랑거리로 내밀 수 있는 것은 손 안에 들어가는 하얀 알 하나이다. 그 알 하나에서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아들은 분명 그 아빠의 그 아들인 것이다. 음악에 맞추어 알을 다루는 그의 손놀림에는 알 전문가다운 면모가 보인다. 또한 아빠가 직접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격표에 그려진 자기 모습을 닮은 알 로봇은 알을 먹으면 힘이 넘치게 된다는 것을 광고하는 듯하다. 그 광고판을 보며 우리의 주인공은 자주 상상의 나래를 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상상을 사실처럼 믿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림 속 아파트 사이사이를 누비는 로봇의 모습들은 아이의 상상세계를 보여준다. 결국 주인공은 비싼 선물들을 내민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아빠를 가장 특별하고 멋진 아빠로 만든다.

그리고 학원버스를 타고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주인공은 알 로봇이 가지고 있다는 크고 긴 팔로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그날 학원에서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알 로봇에 관한 상상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숨기듯 그려진 이미지들의 의미

연필 드로잉을 바탕으로 채도를 낮춘 녹색, 밤색, 빨강 계열 색감의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도 정교한 로봇과 나무 그림은 가히 세밀화라고 할 수 있을 만하다.

인물들의 얼굴 그리기를 피한 것인지 아니면 깊은 뜻이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떨칠 수 없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끝까지 볼 수 없고 아버지와 아들도 뒷모습만 보인다. 아무튼 클로즈업된 알 로봇의 머리를 터는 아빠와 벗겨진 자기 머리를 터는 아빠의 뒷모습의 연속 그림은

이야기에 생생함을 더한다.

알판 속에서 키워지는 알 로봇은 똑같이 개성 없이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까? 뒤 면지 바로 앞 장에는 이야기의 후기처럼 알 로봇 둘이 탁구를 하는 모습이 그려

져 있다. 알 로봇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인지? 작가가 곳곳에 숨기듯 그린 모든 이미지를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행히도 부족한 상상력이나마 동원하다 보면 볼 때마다 새로운 이미지를 읽어내게 된다. 앞 면지와 뒤 면지의 그림은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뒤 면지의 그림은 큰(아빠) 로봇들이 가세하여 작은(아이) 로봇들과 함께 놀아주는 보다 역동적인 그림이다. 이 작은 그림 하나로 새삼 아버지의 역할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서평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매월 발행하는 <도서관이야기> 7,8월 합본에 수록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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