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드라이버
우선자 지음 / 하영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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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을 포기하기엔, 아직 우리는 젊다.

집회서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부자가 헛발을 디디면 친구들에게 부축을 받지만 궁핍한 이가 넘어지면 친구들에게 걷어차인다.’ 책 「할머니 드라이버」를 읽었다. 작가인 ‘우선자’ 할머니가 겪어야만 했던 아픔들이 담긴 글이었다. 그녀가 고백하기를 ‘가난뱅이는 부처님도 외면했다’고 한다. 마음을 먹고, 산속의 절간을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했던 것이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내용은 “가난한 사람은 어디서나 반기지 않기에 마음에 받은 상처가 컸다”는 말이었다. 할머니는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 되었다.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이라는 말이 있다. 계층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땅에 가깝고 부유한 사람은 하늘에 가깝다고 표현해볼 수 있다. 땅에 가까운 동물일수록 지진이나 자연재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듯, 가난한 사람일수록 사회적 재난에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고, 사회적 아픔을 그 누구보다 피부에 가깝게 경험하며, 인식하게 된다. 즉 사회적인 약자야말로 그 누구보다 먼저, 시대의 변화와 고난과 아픔을 인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의 아픔은 곧 우리사회의 아픔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산 속에서 한 남성에게 의도치 않은 임신을 당하지만, 돌봄을 받기는커녕 낙인찍히고, 잘못된 사람으로 치부 당한다. 도리어 어머니로부터 “그 산에 올라가서 골짜기로 구르면 유산이 될지도 몰라”라는 가슴 아픈 말을 듣기도 한다. 작가는 남편으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하고, 매를 맞아야만 했다. 남편은 “여자는 삼 일에 한 번씩 맞아야 남자를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며 주먹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런 일상 가운데, 절간을 찾았지만 스님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고, 고독나무 가득한 산신당에 찾아갔지만 산신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 37세의 나이에, 남편도 집을 떠나버렸다. 그녀는 어디에도 설 땅이 없었다. 식당에서도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고, 계주가 되었지만 주변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한다. 그녀에게 세상은 ‘무서운 곳’ ‘적들만 우글대는 곳’일 뿐이다.

과부나 다름없는 그녀에게 우리사회는 한 가정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어려운 곳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근처에서도 일가족 4명이 생활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이 있었다. 작가도 생활고에 지쳐, 죽음을 결단했다. 그 때였다. 한 식당주인이 다가왔고, 그녀에게 일자리와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그 결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은 담임 선생님, 옆집에 사는 새댁이 있었다. 할머니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고 하였고, 그 때마다 다가와 희망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준 덕분에 할머니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결국에는 봉고차 하나를 중고로 구입하여 삶을 영위하는, 할머니 드라이버가 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기억난다. 홀로 있을 때 친구가 되어준 이, 재정적으로 위태로울 때 후원해준 이,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가 되어준 이, 모든 불행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희망의 촛불을 켜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을 때 붙잡아준 이. 위태로운 순간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던 기억들을 보니, 어쩌면 불행은 우리에게 참된 친구가 누구인지를 가르쳐주고 싶은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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