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점에 가는 이유도 이 넓은 지구에서 내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점은 섬처럼 외따로 떨어진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책과 나를,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 온라인에서 책을 살 수도있고, 전자책을 다운받을 수도 있는데(심지어 더 저렴한 가격에) 왜 굳이 서점을 찾아가는 걸까. 기껏해야 몇십 평 남짓한공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빛이 비치는 서점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드넓은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분이다. 슬며시 서점 안을 둘러보며 주인의 취향을 가늠해볼 때면 나쁜 짓이라도 하는 듯 심장이 두근거린다. 시류에 호응하는 책들 사이에 놓인 비주류의책이 고집스러운 주인의 취향을 은근히 드러낼 때면 슬며시웃음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소중히 놓여 있는 모습을보면 취향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빼내 손에 들 때면 묻어 있는 먼지조차 사랑스럽다. 맨 뒷장을 넘겨 몇 쇄를 찍은 책인지 슬쩍 확인할 때면 안도와 슬픔이 동시에 치민다. 이 좋은 책을 읽은 이들이 겨우 이것뿐이라니. 이 책을 발견한 사람은 75억 인구 중에 고작 수천 명.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과 나는 그 순간, 작은 비밀을 나눈것 같은 관계가 된다. - P137
독서라는 행위가 주는 매력은 준비 없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이토록 쉬운 일탈은 없다. 책을 집어들기만 하면 된다. 숨 막히게 답답한 이 세계를 잠시나마 벗어나책 안의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삶이는 선택할 수 있다. 멀리 떠날 수 없을 때 나는 책 속으로 떠난다.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면 작은 서점을 찾아간다. 확고한 취향을 가진 주인이 선별한 책들을 들여다본다. 그가 조심스레 인도하는 낯선 세계 속으로 발을 디디며내가 살지 못하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을 만난다.
서점이라는 작은 공간은 이토록 커다란 세계를 품고 있다. -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