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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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일허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ㅡ 박준,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 박준의 시에서 풍겨오는 서정은 숨막히고 가슴 여려서 내리 읽을 수 없는 그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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