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명곡의 해독이 없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전범
명저의 해독이란게 있다. 아직 깜냥이 모자라고 줏대가 제대로 안 세워진 사람이, 명저를 잘못 받아들이는 일을 말하는 것일게다. 괜찮은 책 한 권을 어이어이 읽고 난 후, 그 책을 자기 안에서 절대화시켜 모든 사물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부정적 증상 중 대표적인 것은 균형 감각의 상실이 아닐까 한다. 유물론 좀 읽었다고 일체의 정신적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그의 삶과 내면은 퍽퍽할 것인가?
이는 꼭 책을 읽을때만 나타나지 않는다. 서양고전음악에서도 그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프루트벵글러의 지휘와 베를린 필의 연주로 베토벤 교향곡(그중에서도 특히 7번과 9번)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그 기가막힌 템포 설정 변화와 베를린 필의 사운드에 압도되어 다른 연주의 장점이 쉽게 귀에 걸리지 않을게다. 리히테르의 59년 프라하 실황으로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처음 들었다면,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열정 연주는 힘없고 맥빠지게만 들릴 수도 있다. 경이로운 속도로 질주하는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처음 들은 사람이라면 다른 연주자들의 카덴차에서 하품만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서양고전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명반'을 권해주는건 참 부담되는 일이다. 명반이라 평가받고 있는 음반들의 강렬함 때문에, 서양고전음악 감상 최대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비교하며 듣기'의 재미가 상당부분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처음 접하는 곡의 연주를 고를 때면, 연주자의 강렬한 개성이 표출되었다 평가받는 연주보다는, 작곡자의 의도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평가받는 연주에 먼저 손이 가게 된다. 이 음반이 바로 그런 음반이다.
우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월광'을 먼저 들어보자. 이 곡에 관한 한 최고의 연주라 인정받고 있는 길렐스의 아름다운 선율에 비해 적당히 메마르고 절제되어 있다. 앞으로 이어 나올 세 곡을 꿰뚫고 있는 특징을 첫 트랙부터 보여준다. 꾸밈 없는 솔직함과 절제. 극적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템포를 변화시키거나 악보의 지시 이상 강조하지도 않는다. 덤덤히, 악보의 지시 사항을 충실히 지키는 담백한 연주이다. 이 다소 메마른 터치는 2악장에서 두드러진다. 툭, 툭, 던지는 듯한 불친절한 터치에 갸우뚱하는것도 잠시, 정말 화끈한 3악장 presto agitato(빠르게, 선동적으로)가 펼쳐진다. 2악장까지 절제하고 있던 열정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러나 어느 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 솟아오르는 열정을 감당 못해 피아노 건반을 부수어버릴 듯 질주하는 길렐스 젊은 시절의 강렬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오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균형감각은 마지막 트렉까지 이어진다.
그다음 비창. 툭툭 던지는 듯한 메마른 터치, 고지식하게 모든 지시사항을 지켜가는 연주, 전개부 이후 제르킨 특유의 화끈함이 잠시 비추이지만 결코 선을 넘어 오버하지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악보에 메인 재미없는 연주고 좋게 말하면 작곡자의 지시사항을 충분히 따른 안전한 연주이다. 좀 더 강조해도 좋을 텐데 하는 3악장 종결부에서도 덤덤하게 끝맺음을 향해 나아가는 걸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곡 전체적으로 하나의 흐트러짐도, 더함도 없이 균형을 일관되게 지켜나가고 있는 충실한 연주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열정. 상당히 절제된 터치로 시작하지만 1악장 종결부의 강렬함부터 제르킨의 진면목이 나온다. 지금까지의 연주 방식이 '절제'였음을 종결부 강렬한 화음 진행에서 증명한 후 끝을 맻는다. 동일한 주제를 제시하고 조금씩 살을 덧붙여나가는 2악장은 이제껏 내가 들은 열정 2악장 중 가장 객관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연주이다. 연주자의 감정 이입 없이 템포의 변화를 주지 않아도 2악장의 구조 자체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얼마나 베토벤이 대단한 작곡가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3악장. 이제껏 참아왔던 모든 열정을 발산한다. 결코 터치가 가벼운 피아니스트가 아님을, 건반 하나하나를 강렬히 짚으면서 또렷한 음을 발산함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강렬한 타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인상 쓰지 않을 정도의 중용을 지키며, 강조할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정말 균형 감각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주이다. 젊은시절 최전성기의 리히테르, 길렐스의 강렬함에 매료되어있는 사람도 제르킨의 균형감각이 이루고 있는 아름다움은 쉽게 지나치기 힘들 것이다.
보너스로 들어 있는 21번 "고별"소나타 역시 명연이다. 스튜디오 녹음의 절제된 제르킨의 상(像)에, 그만의 화끈함-실황에서 제르킨은 열혈 피아니스트에 가깝다 한다. 이는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녹음에서 피아노 파트가 다른 연주에 비해 엄청나게 두드러지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을 더했다. 전범으로 일컬어지는 길렐스나 박하우스의 연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나라도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미친 듯이 박수갈채를 보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아주 균형이 잘 잡힌 연주이다. 연주자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베토벤의 작곡 의도를 연주에 훨씬 더 많이 반영하고 있다. 제르킨의 '열정'소나타가 아닌, 베토벤의 '열정'소나타를 연주하고 있단 말이다(솔직히 리히테르 59년 프라하 실황 열정의 과도한 긴장감과 박력은 전율적이긴 하지만 원작자의 의도 이상 나갔다는 측면에서, 베토벤의 열정이 아닌 리히테르의 열정이라 하는게 맞지 않을까?). 처음 피아노 곡을 접하면서 서양고전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사람, 리히테르/길렐스의 강렬한 연주에 익숙해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해독에 빠져있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모자란 별 하나는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들어가며 채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