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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의 전설 ㅣ 펭귄클래식 132
워싱턴 어빙 지음, 권민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현시대의 작가들은 이처럼 쇠퇴한 문헌들로 이루어진 외딴 저수지를 찾아가,
고전 지식 혹은 순수하고 더렵혀지지 않은 영어를 두레박으로 그득그득 길어 올린 다음, 자신의 빈약한 실개천에 들이부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다.
- 책 만드는 기술
때때로 세상에는 언어의 가변성에도 끄떡없이 견디는 작가들이 출현하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성의 본질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오.
- 문학의 가변성
우리는 그들의 무덤을 온갖 꽃과 향기로운 풀로 장식한다.
이는 인간의 일생을 나타내는 적절한 상징으로,
성경에서도 인간의 일생은 시들어가는 아름다움으로 비유된 바,
그 뿌리는 욕된 것에 묻혔으나, 다시금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난다.
- 시골 장례식
문명사회는 잔디밭과 같아, 비쭉한 부분은 평평하게 깎이고,
가시덤불은 가차없이 뽑히며, 벨벳처럼 매끄럽고 환한 신록이 되어야 눈이 즐거워한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야생성과 다양성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숲으로 뛰어들어, 골짜기를 탐험하고, 급류를 거스르고, 절벽에 도전해 보아야 한다.
- 포카노켓의 필립
개울가에, 숲의 컴컴한 그늘 속에 뭔가 거대하고, 일그러지고, 시커멓고, 높이 솟은 형체가 보였다.
형체는 꿈쩍도 않은 채,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마치 언제라도 나그네를 덮칠 준비가 된 거대한 괴물처럼.
- 슬리피 할로의 전설
작은 보석상자와 같은 미국 단편 문학의 향연
본 책은 팀 버튼의 영화 중 하나인 슬리피 할로우와 유령 신부의 원작을 비롯하여 12개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슬리피 할로의 전설처럼 환상적인 소재의 글을 비롯하여
어느 시골의 민담이나 풍습을 소재로 한 글, 미국 독립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단편 등 쟝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소재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작가의 이 모든 글의 소재와 상상력들이 작가의 글에서 소개되어있는 것 처럼
여행을 동경한 방랑벽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때문일까 작가가 조물주가 아닌 관찰자의 시점이 되어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들, 직접 목격한 풍습에 대한 감흥들이
작가의 상상력과 결합되어 하나의 글로써 생생하게 탄생하는 순간들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을 책 읽으면서 계속 느낄 수 있었다.
<책 만드는 기술> 에서는 대영도서관에서 작가들이 옛 문헌들로 부터 글을 만드는 것을 발견한 것에 대한 관찰담인데, 현재는 인터넷으로 인해 창작 자체가 제2의 조합으로 인식이 많이 된 상태이지만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책 만들기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작가의 상상을 통한 가설인지는 알수는 없지만서도 :))
책과의 대화를 다룬 <문학의 가변성>, 무덤에 꽃을 심는 영국 시골의 풍습을 다룬 <시골 장례식>, 위트있는 반전이 재미있는 <유령신랑> 등 글의 길이는 짧지만 감흥은 짧지 않은 작은 보석과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또한 모든 단편들의 구성이 짧은 시를 인용하고 나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글의 서두를 은유적인 시로 표현함으로써, 글 읽는 재미와 상상력을 부가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