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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평점 :
1.
가끔은 제목만으로도 지갑을 열게 만드는 책이 있다. 목 빠지게 기다렸던 작가의 최신작이라거나 내 안의 불안이나 욕망을 건드리는 내용일 때 그렇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후자에 속한다. 우선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하는 동질감을 자극한다. 집중력을 잃어버린 ‘나’ 대신 훔쳐간 ‘누군가’의 존재를 명백히 거론하는 프레임에 무의식적인 안도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너만의 문제도 아니고 네 탓도 아니야”
그렇다면 도둑은 누구인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수비를 잘 한들 정교하게 설계된 알고리즘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생계와 여가, 일과 공부, 관계맺음의 모든 과정에 스며들어 있는 기술을 대상으로 개인적인 방어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은 저자의 말대로 공해에 맞서 방독면을 쓰는 일에 불과할 터다. 이 책은 단지 집중력을 수호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독려하는데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둑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제안한다.
2.
꼭 1년 전 나는 열흘 동안 자발적인 유폐를 경험했다. 전북 진안의 시골 한복판에서 핸드폰은 물론 책과 노트, 필기구까지 몽땅 맡겨두고, 하루 열 세 시간 동안 방석 위에서 명상하는 ‘위빳사나’ 프로그램에 참석한 것이다. 명상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디지털 디톡스 효과 만큼은 확실하리라 기대했고, 실제로 그랬다.
뜻밖에도, 아니 당연하게도 별 일은 없었다. 내가 로그아웃한 세계는 문제없이 굴러갔고, 열흘 동안 차단된 정보 가운데 내 인생에 치명적인 것은 없었다. 네트워크 바깥의 내 생활도 그랬다. 호흡으로 대표되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듯 생겨났다 사라지는 오만가지 생각을 바라보면서 나는 간소한 세 끼 식사과 손바닥만한 정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밤이면 미끄러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묵언이라는 단 하나의 규칙 역시 불편보다는 뜻밖의 평화를 선물했다. 그동안 있는 지도 몰랐던, 내 안의 CCTV가 꺼진 느낌이랄까, 외부에 비칠 나 대신 그냥 나 자신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혹 기상 시간을 놓칠까봐 자명종을 챙겼지만 첫 날 하루 빼고는 쓸 일이 없었다. 저녁 9시 30분에 잠들었기에 오전 4시 30분에 절로 눈이 떠졌다. 모든 것이 마법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밀물 뒤에 썰물이 있고,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었다.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1년 후의 나는 그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그 열흘의 흔적은 나의 일상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의 기억과 마음, 몸의 일부분에는 그 열흘의 자취가 의미가 남아 있으리라(고 믿는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3.
<도둑맞은 집중력>은 1인칭 실험으로 시작해서 2인칭 인터뷰와 3인칭 서술 및 청유형 제안으로 확장된다.
집중력은 하나의 재능이자 자원이다. 단지 각 개인의 학업성취도나 업무 성과에 도움을 주는 요소일 뿐 아니라 창의력, 공감력, 더 나아가 좋은 의사결정까지도 연결되는 자원이다. 의사결정은 장바구니 위시리스트의 우선순위 같은 소소하고 개인적인 것부터 투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공동체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집중력 부진이나 저하가 단지 산만한 개인들을 낳을 뿐 아니라 공감력 부재와 미숙한 판단, 대증요법,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 사회의 시스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위기에 처한 집중력은 공동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집중력을 스포트라이트, 스타라이트 그리고 데이라이트의 세가지 유형으로 조명하고, 또 우리가 공동으로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기 위한 네번째 집중력으로 스타디움 라이트를 제시하는 저자의 분석과 제안을 따라가며 새로운 질문과 할 일 목록들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