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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환상 - 의학자가 걷고, 맡고, 기록한 세상의 냄새들
한태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책 <후각과 환상>은 ‘의학자가 걷고, 맡고, 기록한 세상의 냄새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후각은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원시적이고 신비한 감각이지만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후각이 시청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퇴화됐다고 한다. 코는 땅에서 멀어진 대신 눈으로 더 멀리, 더 많은 것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후각은 그러나 여전히 감정과 욕망, 의식과 무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력하고 직관적인 감각이기도 하다.
냄새, 향기, 후각을 키워드로 한 책은 과학인문학 부근에 좌표를 잡고 있는데 실제로는 여행 에세이에 가깝다. 여행의 시기나 목적, 세부적인 동선이나 동반자 등의 구체적인 정보는 휘발시키고 여행지의 풍광과 사람, 분위기와 느낌을 ‘냄새’라는 필터로 걸러냈다. 사이 사이 후각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역사적 배경이 적절히 어우러진다. 책이나 영화 속 장면과 교차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게 되는 것.
저자가 되살리는 냄새의 추억은 책을 읽는 이들의 여행 본능을 일깨운다. 마치 공간 이동이라도 한 듯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이국적인 도시의 뒷골목과 고색창연한 유적지, 자연의 풍광은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을 불러 일으킨다.
“향기는 상상속에서 완성된다….향기는 자유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당분간 접어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여행을 후각이라는 관점으로 복기해보는 기회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