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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 동안의 남미 - 열정에 중독된 427일 동안의 남미 방랑기 시즌 one
박민우 지음 / 플럼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거침없는 입담. 좌충우돌 여행기.
표지에서 차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바보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한 사람. 이 여행기의 주인공 박민우씨다.
그의 여행기는 마치 재미난 만화책을 보는 것 같았다. 저자의 주체할 수 없는 입담에 힘입어 보는 내내 시종일관 깔깔거렸다. 아슬아슬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저자의 기지는 여지없이 발휘되었고, 인간의 생존본능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좋은 호텔, 편안하고 깨끗한 곳에서 잘 나오는 호텔 조식 먹으며 알아서 모시러 오는 투어버스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 한밤중 위험천만한 히치하이킹에 나서고, 여행객을 노린 상술에 놀아나기도 하고, 버스안 좁디좁은 자리에 여러사람이 무릎을 부딪히며 껴앉아 몇시간이고 이동하는...
그냥 여행기가 아니라 푸른 활어처럼 싱싱하고 생생하게 펄떡거리는 방랑기.
그가 좋다고 추천한 숙소들은 막상 내용을 읽어보면서 정말 괜찮은거야? 를 내뱉곤 했지만, 점점 그의 기준이 어떤것인지 알게 되었다. 깨끗한 침대, 조용하고 쾌적한 곳- 이런 것이 잣대가 되는게 아니라 주머니 얇은 여행자들을 위한 저렴한 가격에 맘씨 좋은 주인장-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숙소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앙켈이라는 독일인 아이 엄마가 있었는데 순간 머릿속의 뇌세포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며 지난 기억을 상기시켰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아! 오소희씨의 책에서 등장한 앙켈?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잊지 않고 있었나보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돌고 돌아 만나고, 여섯 다리만 건너면 이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려 했다. 그 수많은 여행자들을 난 집에 앉아 글로써, 책으로써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책장에서 책을 꺼내 뒤적여 보니, 터키에 등장했던 사람은 앙켈이 아닌 앙겔이고 더욱 정확한 차이점은 프랑스인이라는 것이었다. 아이 엄마였다는 것만 같을뿐. 저자식대로 표현하자면 로또 번호 여섯개가 다 맞았는데 알고보니 회차가 다른 정말 너무나도 아쉬운 상황이었다.(웃음)
멕시코 음식이 그렇게나 자제불가라고 칭찬에 칭찬을 늘어놓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네 떡볶이를 제쳐두고 타코가 정말 맛있다고 이야기하더니- 비슷한 음식 사진이라도 좀 보여주길 바랬건만... 이건 그냥 상상이나 하고 나중에 직접 와서 먹어보세요~ 하는건지 먹음직스런 사진은 구경도 안시켜주고;; 이 사람 정말 맘 가는 대로 사진 넣은 건 아닌지;; 자유분방한 방랑자 기질이 책에서도 느껴지는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의 맛깔스런 글솜씨 +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을 더해서 더욱 그 곳을 방문해 보게 하려는 고난이도(?) 전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하지만 호수마을의 설탕 촘촘한 밤하늘은 한 장 정도 사진 찍어 실어 주지 그랬냐고 저자에게 살짝 불평해본다.)
프리즌 브레이크 석호필이 그토록 외쳐대던 패나마(극중 발음으로는;;)- 즉 파나마에 어렵게 어렵게 도착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현실이나 드라마 속이나 파나마 가기는 왜 이렇게 어려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책 맨 앞 서문 p.s에 의미심장하게 등장한 카즈마와 이치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책을 읽는 내내- 저들은 굉장히 친한 친구였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언제쯤에나 등장한담? 라고 살짝 살짝 궁금증을 내비쳤던 내게, '그들과의 본격적인 방랑 레이스는 시즌 2에 계속되니 꼭 보라구!' 라고 말하는 저자의 외침이 들리는 듯 했다.
단순한 여행지 소개가 아닌 그만큼이나 자유분방하고 즐거운 이야기들. 현지의 사람들, 여럿의 카를로스들, 또 수많은 여행자 친구들과 함께 한 진솔하고 솔직담백한 이야기들. 혈기왕성한 열정 하나로 남미 곳곳을 누비던- 아직도 어딘가에서 해맑은 웃음을 띄고 방값을 깎고 있을 것 같은 저자의 유쾌한 이야기 시즌 2가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