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오랫만에 만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내가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한건 <나무>였다.
처음에 굉장히 자유롭고 기발한 상상력에 책을 읽자마자 푹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많은 책들을 구입해 보았다.
그리고 실로 오랫만에 그가 들고 온 신작- <파피용> 역시 예약구매하여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런데- 리뷰를 쓰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인가- 책을 읽고 나서는 조금은 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충분히 기발한 상상력이고, 흥미로운 소재이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이 느낌은 뭘까...
그의 이야기가 재미없었다기보다는, <파피용>의 내용 자체가 인류의 미래를 간접적으로나마 콕 찍어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더 이상 이 지구에서 살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결국 다른 행성으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고, <파피용>에서처럼 살기 좋은 세상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골라내는 작업이 비밀리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은, 아무리 비폭력적이고 착한 사람들만을 모아놓는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또 다시 시기와 질투, 미움, 분노, 폭력 등이 생겨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잠재의식인가? 살짝 성선설과 성악설, 성무선악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웃음)

 

이브와 엘리자베트의 만남-
(처음엔 이브하면 자꾸만 '아담과 이브'에서의 이브가 떠올라 중간중간 이브가 남자라는 사실을 잊곤 했다;;)
그들은 악연을 딛고, <파피용>호의 설계자와 항해사로 미래의 인류를 다른 행성에 정착시키는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를 이끌어간다. 결국 거대한 나비안에서 별들의 인간인 <호모 스텔라리스>들은 계속해서 대를 이어가고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갈망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결국 <3보 전진, 1보 후퇴>의 원칙은 <1보 전진, 3보 후퇴>의 원칙으로 대체되기까지 한다.

지구에서의 인류가 지나왔던 폐해를 <파피용>호의 새로운 인류들도 그대로 따르기 시작한다.
지구에서 살았던 세대, 파피용호의 1세대들이 모두 죽고나자, 원기둥 사회는 전쟁과 전염병, 종교전쟁, 독재자 출현 등으로 검게 얼룩지기 시작하고, 결국 그들이 목표로 했던 곳에 도달할 즈음에는...
14만 4천명 중 단 여섯 명만이 남게 된다.
여섯 명......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의 의미를 실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처럼 보인다. 게다가 여자는 단 한 명 뿐이라니...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주선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별에 착륙해야 하는데-
소형 우주선 <무슈롱 2호>는 단지 2인승이었던 것이다. 무게 제한이 있어서, 결코 2명밖에 탈 수 없는... 왜- 진작에 조금 더 커다란 우주선을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20명도 아닌 단 두 명-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고 해도... 단 두 명만이 새로운 행성에 발을 디딜 수 있다니... 참 안타까운 대목이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모두 전쟁과 전염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건지...;;;
 

어찌됐든- 남녀 두 사람이 무슈롱2호를 타고 새로운 행성에 착륙한다.
엘리자베트-15와 아드리앵-18. 이들은 새로운 행성에서 어느 정도 적응해 살아가지만, 결국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이후 따로 살던 엘리자베트는 뱀에게 물려 죽음을 맞는다.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에 쩔어 지내던 아드리앵은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인류라는 사명감을 갖고는 자신의 갈비뼈를 빼내어 <에야>라는 여자아이를 탄생시킨다. (어디에서 많이 들은 것 같은 이야기;;;)
결국 아드리앵과 에야는 -새로운 행성의 아담과 이브는- 그 곳에서 인류의 대를 이어가겠지...
 

파피용호에서의 일들을 지켜보며 인간이란 어디를 가든 결국엔 예전 지구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겪어가겠구나- 싶지만, 그래도 조금은... 조금은 더 이전 지구보다 나은 곳을 만들어 살기를 바란다.
예전 지구인들이 만들어냈던 폐혜들을 최대한 만들지 않고 모두와 공존하며 살아가길...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