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한일전 - 동아시아 신냉전 시대에 마주한 결정과 갈등과 대립의 순간들
길윤형 지음 / 생각의힘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잊혀진 감이 있지만, 2017년~2019년은 바야흐로 외교적 격랑의 시대였다. 2017년 북한의 ICBM 발사 및 김정은과 트럼프의 대립각, 2018년~2019년의 갑작스런 분위기 반전과 미북정상회담과 그 좌초 2019년 중반에 터진 일본과의 무역분쟁. 그 순간에는 잘 알기 어려우나 이런 일련의 사건을 이어 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되기 마련이다. 본서 신냉전 한일전은 그 약 3년 간의 외교적 흐름을 한국, 북한,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복기한 책이다. 필자의 호오와 무관하게 정신 없이 사건이 터지던 2017~2019년의 외교적 흐름을 존 볼턴의 회고록 등의 참고문헌 인용을 곁들여 복기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 실패 원인을 두 가지 정도로 보는 듯 하다. 첫째는 임기 내에 어떻게던 획기적인 대북 외교 성과를 만들겠다는 목표 의식에 젖은 성급함, 둘째는 (그것이 의도되었건 아니건) 일본 패싱 및 그로 인한 일본의 반발. 덧붙여 일본에 대항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지소미아 탈퇴 선언 등의 전술 실패.

현 정부는 남북 평화 관게 조성이라는 의지가 워낙에 강하였고 한반도 중재자론을 내세우며 미국과 북한의 외교적 화해를 이끌어내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하지만 진짜 중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에 대하여 레버리지가 있어야 했는데, 장밋빛 기대를 품게 했던 2018년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현 정부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로 인해 정작 한국이 패싱되어 버리며, 미국과 북한은 서로의 현실 인식이 달랐기에 파국에 이르렀다는 것이 큰 흐름으로 보인다. 임기 안에 승부를 보려고 성급하게 드라이브를 건 것이 패착으로 보인다.

또한 저자인 길윤형 기자가 (필자의 관점에서는) 절대로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리한 한일 외교 흐름을 볼 때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지나치게 무시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위안부 합의나 징용공 문제, 그리고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우려에 대해 명확한 답을 계속 주지 않은 것이다. 특히 2019년 초 문재인 대통령의 담화에서 NHK 기자가 한 질문에 대해 '너희는 가해자국인 만큼 마땅히 반성하는 자세로 있고 재촉하지 마라' 정도의 답은 당시에도 화제가 됬던지라 기억에 남는다. 물론 2019년 중순에 일본 정부가 실시한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잘한 일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여기까지 이르게 했고 동시에 이후에도 감정적인 대응을 일삼은 한국 정부의 대응 역시 칭찬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를 밝혀 보면 위의 전술적 패착 이전에 한반도 중재자론 이라는 전략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거시적 전략 자체는 옳았으나 성급함 및 일본의 방해 공작 등으로 이게 와해되었다 보는 것 같은데, 애초에 목표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미북정상회담 및 미북 관계 정상화를 이루어내고, 제재 해제 등을 통하여 북한에 경제 성장의 길을 열어주고 평화적 관계를 구축하여 종국적으로 북한의 핵을 폐기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통일을 이룬다. 대략 이 정도를 목표로 설정한 것이라 가정해본다.

일단 북한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신뢰할 수 없다고 그저 거부하기만 하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수십 년 전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일으킨 북한이다. 그 이후에도 각종 도발행위를 이어왔다. 그런 북한과 덜컥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한다고 하여 무언가가 크게 바뀔까? 북핵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요식적으로라도 천안함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의 어떠한 액션도 없이 그저 평화 협정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된다고? 베트남에서 평화협정이 이루어진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솔직히 북한에 대한 신뢰도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에서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필자는 좀 시큰둥했었던 기억이 난다. 협정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결국 상대가 약속을 이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담보되어야 의미가 있는 건데 애석하게도 필자는 북한을 믿기가 어렵다.

또한 비단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사정거리에 둘 수 있는 미사일이 남는다. 북한은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메우기 위해 비단 핵무기 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한국과 미국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걸 저자는 일본의 '방해'라고 묘사하는데, 사실 지리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미국보다는 일본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것이 한국 아닌가? 일본을 타격할 수 있으면 당연하게도 한국도 타격할 수 있다. 당연히 북한이 가지는 수많은 위험성을 면밀히 계산하여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염려마저도 그저 '통일을 위한 발걸음'에 대해 방해가 되는 정도로만 보는 인식은 동의할 수 없다.

애초에 한반도 중재자론이라는 명칭 자체가 다소 모순적이다. 중재라는 건 이해관계에 비교적 얽매이지 않은 자가 갈등을 빚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를 원만하게 이끌어주는 걸 의미한다. 러일 전쟁 당시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한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런데도 합의 그 자체에만 목을 메며 위에서 제시한 이해관게에 눈을 감는 듯한 모습은 중재와 당사자라는 단어 그 자체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통일을 한다고 할 때 무슨 이득이 있는지에 대한 합의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통일에 대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은 있으나, 실제로 통일을 한다고 했을 때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필자가 살아있는 동안은 너무나 다른 두 사회가 합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통째로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계산은 다 무시하고 그저 민족적 감성으로 통일을 부르짖는 것은 국가의 이해관계보다도 감성을 앞세운 것이라 여겨져 동의하기 어려웠다.

길윤형 기자의 본인의 기억 및 다양한 참고문헌을 활용한 복기는 그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중재자론이라는 대 전략 자체에 대한 암묵적 긍정을 보며 언젠가 길윤형 작가가 방송에서 일본을 '반통일 세력' 정도로 묘사한 것을 다시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재미와 씁쓸함이 교차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ericjoh 2021-08-2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미북중이고, 북한 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이 이미 몇차례 검토했던 미국의 전쟁재개이다. 그경우 피해가 불가피한 남한은 부수적임을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남한은 주체가 아닌 중재자가 맞다고 본다.
박근혜의 위안부합의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외교적 합의를 후속정권이 과연 뒤집을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