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꾼딸라 - 세계의 고전 인도편 2
깔리다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지식산업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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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년 전, 북인도는 동서에 걸친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굽타 왕조의 통치하에 번영과 풍요를 누렸다. 힌두교가 나오고, 숫자 0이 발명되고, 아잔타 석굴이 만들어졌으며, 산스크리트(싼쓰끄리뜨)어가 공용어 겸 엘리트 언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시기다. 이 굽타 왕조의 제 3대 왕이었던 찬드라굽타 2세는 영토를 크게 넓힌 무인이면서 동시에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여 '시인의 왕'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는데, 그의 궁정에는 아홉개의 보물이라고 일컫는 아홉 명의 시인이 있어 작품활동에 후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 중에 깔리다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방랑객으로 유명하며, 괴테와 실러에게 영감을 주었고, 인도인들이 세익스피어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호언하는 시인.

당연한 듯이 적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찬드라굽타 2세의 궁정시인이라고는 하지만 깔리다사가 우자이니를 특히 자주, 잘 묘사하고 있으니 우자이니 출신이거나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며, 비크라마디티아(위끄라마디띠야. 태양이 내딛는 발걸음이라는 뜻. 찬드라굽타 2세의 별호) 왕을 그리는 희곡을 쓴 것으로 보아 그렇게 추측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이런 추측이 맞다 해도, 위대한 방랑객으로 유명한 시인이 어떤 식으로 궁정의 후원을 받았을까. 방랑을 끝내고 궁정에 정착했던 것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 후원을 받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잠깐씩 궁정에 들러 작품을 바쳤을까? 방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느낌대로 혼자 걸어다녔을까, 아니면 혹시 말이 방랑이지 편안하고 호화로운 유람을 다녔던 건 아닐까. 깔리다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추측할 단서도 하나 없는 지금은 모든 것이 안개 속에 잠겨있을 뿐이다. 

그런 깔리다사의 대표작 두 작품이, 그것도 영어 중역이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완역으로 국내에 출간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지식산업사에서 '세계의 고전: 인도편'이라는 이름하에 나란히 낸 '메가두따'와 '샤꾼딸라'. 인도에서 팔리(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있는 역자의 손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역시 인도에서 미술을 공부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삽화를 그렸다. 훌륭한 주석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역시 읽기 쉽게 정리한 인도 신화 책을 몇 권은 읽고 보는 편이 좋겠고, 기왕이면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를 읽고 보기를 권한다.

두 권 중에서 '샤꾼딸라'는 (어쩐지 상술같은 표현이지만) 괴테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바로 그 작품. 원제는 '아비즈냐나샤꾼딸라' -즉 '샤꾼딸라를 알아보는 증표'인데 1789년 영어로, 1791년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샤꾼딸라'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원래 '마하바라따'에 들어있는 이야기에 깔리다사가 살을 붙이고 재구성하여 7막의 희곡으로 만들어낸 이 작품은 산스크리트 문학의 꽃으로 불린다.

겸손한 왕 두샨따는 사냥을 갔다가 성자의 양녀이며 요정의 딸인 샤꾼딸라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하여 각자 홀로 마음을 태우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약속하지만, 사랑에 빠진 샤꾼딸라는 두르사와스라는 성자를 홀대하는 바람에 '사랑하는 사람이 너를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저주를 받고 만다. 다른 이들의 애원에 마음이 조금 풀린 성자는 왕이 증표로 주고 간 가락지를 보면 기억을 돌이키리라 예언하는데, 흔히 그렇듯 아이를 배고 왕에게 가던 샤꾼딸라는 가락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비탄에 젖은 샤꾼딸라는 설화나 민담, 혹은 동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줄거리지만 이 희곡은 실로 우아한 데다, 뭐니뭐니해도 재미가 있다. 희곡이라는 장르를 별로 즐기지 않는 본인도 정신없이 읽었을 정도니까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메가두따보다 이해하기 힘든 표현도 훨씬 적다.

덧붙여 이 책에는 부록으로 '산스크리트 문학' 개관과 간단한 발음규칙이 실려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어 표기법상 '꾸베라'가 아니라 '쿠베라'로, '마하바라따'가 아니라 '바하바라타'로, '싼쓰끄리뜨'가 아니라 '산스크리트'로 옮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역자는 원어 발음을 중시하여 전자와 같이 표기했으며, 그에 따라 이 리뷰에서도 책 내용에 관계된 표기는 모두 그대로 적고, 익숙한 표기대로 적은 경우에는 괄호 안에 원어 발음을 병기했다. 문제는 'v'자 발음이다. 된소리로 쓰느냐 거센소리로 쓰느냐 정도의 차이는 알아보기 어렵지 않지만 'va'를 기존의 '바'가 아니라 '와'로 읽기 시작하면 같은 이름도 상당히 달라 보인다. 쉬바를 쉬와로, 바루나를 와루나로 읽는 식이다. 외국어 발음을 완벽하게 옮기기는 불가능하다 해도 우리식으로 하면 더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영어식으로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역자의 판단이다. 이제까지 익숙해진 발음이 있고, 앞으로도 표기규정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는 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이며, 고마운 부록이다. 덕분에
고전으로, 인도 문학으로, 희곡으로만이 아니라 신화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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