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숲'이라는 말은 어째서인지 밤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모든 그로테스크한 것, 환상적인 것, 신비스러운 것, 꿈과 같은 것들은 태양이 내리쬐는 낮보다는 밤에 더 어울리듯이 평야와 인간의 도시보다는 숲 속에 더 어울리는 것이다. 아직 인간의 침범을 받지 않은 곳, 오래 전부터 인간의 영역 밖에 남아있었던 곳. 그것이 아직까지도 숲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느낌이 아닌가.

그리고 이 소설 속의 숲은 그런 이미지를 한껏 응축시키고 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손상되지 않은 숲. 침입자를 물리치고 끝없이 이어지는 깊고 어두운 내면을 간직한 숲. 그 숲속에서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모든 환상이 실체를 갖추고 튀어나온다.

수수께끼같은 발단에서부터 소설을 읽어나가며 나는 태양빛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어두운 숲 속 오솔길을 걸어들어가는 느낌에 빠져들었다. 저 안에 뭔가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게 있다는 느낌. 신화적인 비극을 예감케 하는 글의 전개는 그런 불안감과 매혹을 불러 일으킨다. 환상문학, 혹은 SF라는 장르에 속해 있으면서도 장르와 무관한 독자들에게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진정 궁금한 것은 이 책의 속편이 나올 날이 있을까 하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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