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의 사나이 그리폰 북스 16
필립 K. 딕 지음, 오근영 옮김 / 시공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만일...'에 부딪친다. 만일 히틀러가 어렸을 때 죽었더라면, 만일 연합군이 며칠만 늦게 일본을 항복시켰더라면, 만일 인종의 쿠데타가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등등 등등...한끝 차이로 벌어질 수 있는 엄청난 변화를 생각해보는 그런 가정은 반쯤은 안타까움, 반쯤은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결국 역사에 만일이란 없다는 말로 결론을 맺게 된다.

뭐라고 한탄하고 안타까워해도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 돌이킬 수 없다면 '만일...'이라는 가정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것은 대체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체 역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안타까운 일을 좋은 쪽으로 바꿔보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물론 그 반대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한 판 즐거운 상상은 될지 모르나 문학이 되기는 어렵다. 후자의 경우, 우리나라가 아직 일제 치하에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비명을 찾아서'나,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이 패배했다는 가정하에서 그려지는 이 소설, '높은 성의 사나이'가 모두 해당된다.

그래서...대체 어째서? 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가정하는가? 왜 읽는 이를 음울하고 어두운, 그다지 들어가고 싶지 않은 어둔 숲속으로 끌어들이는가? 독일과 일본이 승리했다면 얼마나 무섭고 싫은 역사가 전개되었을까를 보여주어, 연합군의 승리를 자랑하고 안도하라는, 그런 의도일까?

천만에. 소설을 다 읽어본 결과 다행스럽게도 그런 의도는 아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은 '높은 성의 사나이', 연합군이 아니라 독일과 일본이 승리한 세상 속에서 그 반대의 현실을 - 즉 지금과 비슷한 현실을 - 그리는 소설을 쓴 바로 그 작가에게 있다.

이 소설 속에서는 두 번, 소설 속의 진실과 허구가 뒤바뀌는 장면이 나온다. 펜던트를 들여다보다가 한 순간 아마도 '현실'(지금 미국의)에 발을 들여놓은 일본인의 모습과, '메뚜기 무겁게 가로눕다'라는 소설을 왜 썼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주역이 '진실이기 때문에'라고 답하는 장면이다. 진실 속의 진실, 허구 속의 허구.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물어보자. 만일 연합군이 2차대전에서 졌다면......분명, 많은 일들이 달라졌을 것이고 우리에게나 유럽인들에게나 과히 행복하지는 못했겠지만, 나치스가 지독한 광기의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과연 그 승리가 전적으로 옳고 바르기만 했을까?

혼란을 초래하는 질문과 생각이기에 거기까지 정리해볼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 소설이 그리는 대체 역사가, 지금의 역사 - 진실을 돌아보게 하기에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본 문화에 대한 묘사가 넘쳐나기는 하지만, 필립 딕의 필치는 싫은 기분이 드는 숲속 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만들만큼 뛰어나며, 소설 속에서 시작된 자아성찰은 독자들에게까지 여러 가지 상념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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