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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에서 천산까지
김호동 지음 / 사계절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이라기보다는 감상문이 될 이 글, 제목이 영 탐탁치 않아 몇번이고 지우고 또 지우다가 결국 책 제목을 그대로 쓴다. 황하에서 천산까지 아시아 대륙 한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네 민족, 네 소수민족의 이야기를 그리 쉬운 감상으로 엮어버릴 수 없었기에.
"우리는 곧잘 강한 자와 강한 민족의 역사에 매료된다. 위인과 영웅의 생애를 즐겨 읽는 것은 어쩌면 우리 내면에 '권력에의 의지'가 꿈틀거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세계제국을 건설하고 지배했던 파라오나 시저 혹은 징기스칸을 읽고 싶어한다. 그러나 진정한 강자는 약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약하고 짓눌려 온 민족들의 비가를 들려 주고 그들이 소중하게 간직하려 했던 신앙의 자취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것을 듣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단지 오늘날의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한다는 차원을 넘어, 우리 민족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이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참된 마음의 넓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저자 서문 중에서)
글은 담담한 어조로 회족, 몽골족, 위구르족과 티벳인들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지금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열광적인 어조도 아니고 과장스럽지도 않은 담담함.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사람살이의 눈물을 보는 건 나만의 감상적인 눈일까.
사람이란 결코 선하게 태어난 생물이 아니며 생명이란 그저 화학 반응의 일종, 사회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밟고 살아가는 치열한 경쟁터일 뿐이라고, 인간이 자칭하여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오만을 비웃다가도... 문득 마음 한구석이 싸아해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맞닿뜨린다. 어째서 사람의 사람다움은 행복과 풍요 속에서가 아니라 절절한 고난과 아픔 속에서 빛을 발하는지.
그러나 저자도 그렇고 나도 또한, 그들 중국의 소수민족이 언제나 마음아픈 약자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으며 지금의 강자들 또한 한맺힌 시간을 보냈음을 안다. 또 짓밟히고 헐벗은 자들이라 하여 늘 그렇게 아름답고 꿋꿋하지 못함 또한 안다. 그럼에도 지금,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작은 목소리의 주인들을 알고 싶은 것은, 사람다움이란 것의 답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믿고 싶은 가냘픈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을 비난할 줄만 알지 우리 안의 곪은 상처를 들여다볼 줄 모르는 우리 나라에서 더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역사공부를 배부른 자들의 소일거리쯤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