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대변인 1 - 엔더 위긴 시리즈 2 엔더 위긴 시리즈 2
올슨 스콧 카드 지음, 장미란 옮김 / 시공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외계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적어도 이제까지는 확실히 그렇다. 인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자들을 모두 외계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에게 적대적이 되기 쉽다. 고작해야 200년 전에, 인류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사냥한 다음 단 하나 남은 생존자가 죽은 후 박제하여 박물관에 전시했었다. 그것이 인류란 족속이다. 백인에게는 흑인이 인간이 아니었으며, 중국인에게는 북방민족이 인간이 아니었고, 중세 기독교인에게는 이슬람교도들이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이제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답은 여전히 No!이며...종교학이니 인류학이니 하는 학문은 모두 그 문제를 붙안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바로 그 딜레마, '타자와 나'라는 문제를 이 소설만큼 열심히, 훌륭히 풀어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특히나 피기들에게 문명을 전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갈등은, 현대 인류학자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찍기 위해 집안에 있던 TV를 치우고 일부러 전통복을 갖춰입는 오지인들, 다른 일은 다 팽개치고 관광객과 인류학자들에게 자신들을 보여주고 사진을 찍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원주민들. 그것이 지금의 현주소이며, 결국 문화는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건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 어려운 방향으로 흘렀는데 ^^;; 여하튼 그 복잡한 구성 속에서 하나씩 풀려가는 수수께끼와, 진실을 쫓아가는 지적 즐거움 외에도 나를 더욱 감탄시킨 것은 저자가 인간, 인류, 혹은 우리의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에 대해서 날카롭게 통찰하고 소설 안에서 그로 인한 실수와 어리석음을 말하면서도 그 어조 속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웃기는 쉽지만 감싸안으며 질타하기란 힘든 일. 그것도 나같이 마이너스 자장이 강한 사람에게서도 조소를 사지 않을 정도니까, 이건 진짜라고 생각한다. ^^;;

전작, <엔더의 게임>은 엔더가 '사자의 대변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훨씬 모험소설다운 그릇에 담아내고 있었다. 조금 더 가벼운 테마인 대신 숨돌릴 틈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에 비해 후속편인 (혹은 완성편인) 이 작품은 훨씬 무겁다. 그러나 전작과 비교해서 어느쪽이 낫다는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일 뿐 아니라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각자의 가치가 있으니까.

다만 아쉬운 것은, 가능한 한 시야를 넓히려 한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미국'의 '백인' '남자'임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누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지울 수 있겠는가.

이 책은 SF작가 뿐 아니라 SF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것이라 생각하며, 실제로 그랬다. <엔더의 게임>부터 읽는 편이 좋겠지만 그냥 읽어도 좋을 듯. 정신없는 몇 시간의 여행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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