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남자
임경선 지음 / 예담 / 2016년 3월
평점 :
읽는 내내 사실 조마조마했습니다.
원래 좋아하는, 아니 존경하는 누군가의 생활은 응원하게 되잖아요?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인 지운이 막 불행하거나 힘겨운 삶을 산 건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인생의 무덤으로서의 결혼 생활을 뒤로하고
아주 우연히 만난 낯선 남자와 천천히,
스미듯 사랑에 빠지는 내용입니다.
그래요. 불륜이야기죠.
아무리 픽션이라고 연막을 쳐놓은들,
작가님과 주인공을 동일시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전 작가님의 모든 작품을 다 읽어보았고,
트위터도 팔로해서 받아 보는 열혈 팬(?)이기에
소설속의 지운과 임경선 작가님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녀의 결혼생활이 남편과 너무 아무일도 없는 평탄함을 가장한 지루함에 휩싸이진 않았는지,
그래서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지,
혹시 현재 지운처럼 사랑에 빠져있는 상태는 아닌지,
독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언니의 동생"으로 걱정하는 지점들이 곳곳에 있었어요.
그래서 책의 저 말미에 작가님이 이 소설을 탈고한 이유이자
계기(?)에 대해 써놓으신 걸 보고 조금은 안도했달까요?
게다가 제가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와 저의 가치관이 아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대한 그녀의 시선, 사랑을 하려는 방식 등
특히 사랑이나 인간에 대한 판단이 제가 나이를 먹으며 쌓아온 그것과 아주 비슷했어요.
그래서 그녀의 책들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작가님이 책의 곳곳에서 말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몇 개 쯤은 이유가 있다고'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에 대해서 지적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고요.
이건 정말 지지부진하고 힘든 사랑을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에요.
혹자의 사랑이 윤리적으로 어긋난다거나 객관적으로 썩 건강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해도
누구도 그에게 검지손가락을 뻗을 권리는 없어요.
제가 지난 몇 해간 부딪히고 깨지면서 깨닳은 많은 복잡한 감정들을 이렇게 책 안 몇마디로 깔끔하게 녹여내시다니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게 아닌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자체의 이야기를 좀 보탤까해요.
사실 제 블로그에도 이미 리뷰가 있듯, 그녀의 첫 장편소설은 그리 기억에 남는 책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가쁜 숨으로 며칠 만에 다 읽고도
주말에 날잡아서 한번을 더 몰아읽고
친구에게도 빌려주려는 계획을 세우게 만들었어요 !
호흡이 짧은 문장과 서정적인 분위기로 진행이 되기때문에
딱딱 날짜감각이 세워지고 입체적으로 구성되어있는 책은 아니지만, 물 흐르듯이 읽을 수 있어요.
작가 자신이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고, 하루키를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꼽을만큼
일본 문학에 가까우신 분이라
아무래도 일본 문학을 즐기는 제게도 이런 호흡의 문장과 이런 분위기의 소설이 좋게 읽히는 거 같아요.
소설 속 인물들을 따라 가을에서 다시 봄으로 여정을 갈무리하고나면
남아있는 책장의 두께에 아쉬워질거에요. 분명히.
그녀의 첫 장편소설을 읽을 무렵에는
행복했음에도 행복한 줄을 몰랐을 때였고,
지금은 행복 후에 오는 '달콤한 후회'와 심연을 잘 아는 때라서 그런지
마냥 좋다고 좇던 작가님의 세계가 이제야 뚜렷하게 보이는 거 같습니다.
이번 건 그녀의 첫 장편인 <기억해줘>를 다시 꺼내보게 하는 엄청난 독서였던 거 같아요.
왠지 한겨울에 출판되었으면 좋았을 거 같은, 차갑고도 차분한 느낌의 책입니다.
마음이 좀 차가울 때 읽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