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어머니를 돌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당신들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서 행동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자신의 기준과 가치관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치라고 생각할 때, 그 자신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 스스로가 스스로를 제대로 가누고 돌보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치매나 알츠하이머 라는 병은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병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인식하지 않는 부분에서 일어나고 말과 행동이 스스로의 인식 이외의 부분에서 일어나버리는 것. 그것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들. 내가 모르는 나의 행동들이나 말에 의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입는다면 그 보다 괴로운 일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또한 스스로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괴롭고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곁에서 그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이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아직 완전했던 시절의 과거를 반추하는 것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그런 괴로운 삶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는데도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그리 큰 의미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저자 자신 역시 눈에 문제가 생겨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방식으로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이런 엎친 데 덮친 격의 상황은 저자에게 있어 어머니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좀 더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준다. 그렇게 스스로와 어머니의 상황에 고통을 받으며 어떻게든 노력하려는 딸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슬프게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것은 사실 그 어머니가 아닐까? 문득 문득 돌아오는 정신과 자신을 이전과는 다른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것마저 점점 감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몸. 그런 자신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랑하는 딸. 나는 이 책에서 저자인 딸이 아니라 딸이 쓴 글귀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딸의 노력이 모자라거나 딸이 덜 슬퍼서가 아니라, 몸이 건강하고 멀쩡하게 눈, 코, 입, 귀, 뇌를 사용할 수 있는 우리는 결코 어머니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까지 외롭게 어딘가에 남겨져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울먹이며 “숨을 천천히 쉬어요.” 라고 말하는 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울먹이는 딸을 보며 그 목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어머니를 이 책에서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딸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숨을 몰아쉬는, 그리고 그것을 너무 고통스럽게 해내고 있는. 모든 아픈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프지 않기 때문에 짊어져야만 하는 짐이며 사실 우리가 그런 짐을 아무리 진다한들 그 당사자만큼 아픈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특히 이 책에서 나오는 ‘어머니’의 병,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병은 그 무엇보다도 괴롭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어머니의 앞에서 그녀가 좀 더 나쁜 상황으로 변해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괜찮아요” 라고 그녀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당신의 곁에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고. 그녀의 마지막 날까지 함께 해주어야 하는 것은 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딸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