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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쇼 선생님께 ㅣ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평점 :
헨쇼 선생님께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메일과 문자를 주고받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즈음, 멀리 네팔에서 친구가 보내 준 편지 한 장을 받아들고 한참을 뚫어져라 그 속에 글들을 보고 있었다.
예전만 해도 위문편지도 쓰고 팬시점에서 예쁜 편지지와 엽서를 모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요즈음은 쉽게 메일로 문자로 나의 감성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쪽이 조금 허전해 짐을 느꼈다.
그런 점에서 리보츠의 편지와 일기로 꾸며지고 있는 <헨쇼 선생님께>는 편지 이상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읽어주신 <개를 재미있게 해 주는 방법>의 책을 감동 깊게 들은 리보츠는 책의 저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트럭을 운전하면서 미대륙을 횡단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생활방식과 맞지 않아 이혼을 한 엄마와 함께 살면서 리 보츠는 늘 바쁜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사는 아빠와 산적(개)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는 자신의 이런 이야기를 서툴지만 솔직하게 헨쇼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리 보츠는 헨쇼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있지만 자신이 누구에게도 털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글을 통해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자인 우리는 아이 리 보츠의 생각과 일상을 편지를 통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뛰어난 것 같다. 편지를 쓰면서 리 보츠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헨쇼의 답장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아이는 일기를 통해 본격적인 자신만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면서, 책은 편지와 일기가 적절하게 혼재하면서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리 보츠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는 인생의 소중한 진리 또한 알아가게 된다. 좋은 글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과 적극적으로 듣는 것이 필요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다.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편지글 마지막에 리 보츠가 서명한 글귀일 것이다. 첫 장에서 리 보츠는 자신의 이름 뒤에 ‘리 보츠(남자임)’을 바로 뒷장에서는 선생님의 friend, 선생님의 으뜸 독자로 다시 한번 자신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하면서 헨쇼 작가와의 끈끈한 유대를 이어가고자 한다. 이후에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리 보츠’ ‘선생님을 존경하는 리 보츠’ ‘선생님의 일등 팬’ 등등 아이에게 헨쇼는 작가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지 중에서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마음이 상했다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내기도 한다. 리 보츠의 아이다운 발상이 편지에서 그래도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가 있었다.
책은 리 보츠의 편지와 일기를 통해 아이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출장 요리사인 엄마의 친구가 싸준 도시락이 맛이 난 까닭에 자신의 도시락에 자꾸 손을 대는 친구를 잡고 싶은 생각에 리 보츠는 도시락에 경보기를 달게 되고 이를 통해 늘 자신 없어 하던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이 된다. 그리고 친구의 방문에 경보기를 달아줌으로써 자신도 꽤 쓸모 있는 사람이란 사실에 기뻐한다. 또한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타고 싶은 리 보츠는 꾸며내는 이야기 대신 아버지 트럭을 통해 본 세상 이야기를 쓰게 되고 상을 타게 되고, 작가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글이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아이는 글쓰기에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된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책 <헨쇼 선생님께>는 편지와 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의 한 방법이란 것을 일러 줌과 동시에 이혼 가정에서 아이가 겪게 되는 외로움과 아픔들이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녹아내리면서 아이 리 보츠와 독자가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즐거움을 전해 주고 있다. 아빠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아빠를 그리워하고 그런 아빠와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엄마의 눈물을 이해해 가는 리 보츠는 아이의 감성적인 언어를 통해 어른인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책의 마지막 편지에는 리 보츠가 늘 상상하던 즐거운 일이 현실로 이루어 졌음을 보여준다. 언젠가 트럭을 타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아버지가 현실에서 산적(개)과 함께 리 보츠를 기다리고 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엄마에게 ‘당신이 그리웠다’고 이야기 하면서 행복한 결말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편지와 일기가 혼재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히 편지만으로 이뤄졌다면 책을 읽는 재미가 조금 덜했을 텐데, 일기는 통해 리 보츠 이야기가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편지와 일기의 서로 다른 방식이 주는 재미가 제법 솔솔하다. 단순히 이혼한 가정의 아이가 불쌍하다는 동정도 이 책에서는 금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어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씩씩하고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책에서 마지막 결말이 어설픈 해피앤딩이 되기보다 아버지의 방문을 통해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하고 리 보츠를 그리워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복선을 깔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책을 덮을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