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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한비자 - 쾌도난마의 교과서
니콜로 마키아벨리 & 한비자 지음, 신동운 엮음 / 스타북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학창시절,
마키아벨리는 덕망있는 군주가 아닌 교활한 군주를 주창하였으며,
한비자는 가혹한 법치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삼아 국민들을 억압하고자 한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로 배웠다.
그리고 그들의 이념과 주장이 '다행히' 당대나 후대에 채택되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통치가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집권의 위태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데
로베스 피에르나 진시황의 공포정치가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였는가가 그 예에 해당하고
기독교적 선정 정치와 유학이라는 훌륭한(?) 대체 이론이 있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라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마키아벨리와 한비자가 다시금 재조명받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몰라서 그렇지 그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무자비한 폭력이 아니라 균형과 질서 있는 사회였고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사상가들이었음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생겨남은
진정 그들의 사상이 작금의 우리 시대에 필요해졌기 때문인 걸까?
과연 그들의 어떠한 주장들이 현재의 우리와 우리 정치, 사회에 접목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한비자의 '한비자' 구절들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은 교훈과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군주론'과 '한비자'의 내용이 현재의 경영환경과 접목되어 처세의 원칙으로 탈바꿈하는데
처세라는 것이 상황에 맞춰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럴 땐 이랬다 저럴 땐 저랬다 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들에게 엄격할 땐 엄격해야 하나 또 자상하게 살펴보기도 해야 한다는 식이다.
사실 이 책이 군주론이나 한비자를 심도있게 분석하고 해석했다기 보다는
일반적 처세 원칙 - 시중의 흔한 자기계발서에 나와있는 것들에
군주론과 한비자 옷을 입혔다는 것이 읽고 난 소감이다.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던 부분은 마키아벨리 편도 그렇고 특히 한비자 편에서
각각의 주제가 챕터별로 나누어져 있음에도 한 챕터 안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계를 밟아 앞으로 나아가라'는 주제를 말하면서
제 경공이 재상 안자의 병이 위중함을 듣고 마차를 달리다 마음이 급하여 뛰어갔다는 고사가 등장하는데
급하게 일을 처리하느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 미련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므로
마음만 앞서지 말고 침착하게 가장 좋은 방법을 구하라는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단계를 밟는다는 것과 연결시키는 것이 아주 부당하는 것은 아니라도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또한 같은 챕터에서 관련 역사 속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소진이 공부 후 집에 돌아왔으나 가족들의 냉대를 받고 다시 공부하여 재상이 된 후 환대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더 끈기있게 목표에 정진하라 정도가 적당한 교훈일 것 같다.
이러한 미스매치를 하나만 더 말하자면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주제를 말하면서
전국시대 유명한 조각가 환혁이 조각을 할때 눈과 코를 나중에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고사와
관련 역사 속 이야기에서 오징어 값이 높으면 오징어만 고집하고 게 값이 높으면 게 잡기만 고집하는 어리석은 어부의 얘기까지는 그렇다쳐도
나갈 때 흰옷을 입었다가 비가 오자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왔더니 개가 못알아봤다는 양포의 고사는 뜬금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한비자에서 실제 양포의 고사를 융통성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랬다면 더 자세한 풀이가 아쉬운 대목이다.
군주론과 한비자로 나누어 시리즈로 냈으면 어떨까 싶은데
이걸 한권으로 합하다보니 분량은 좀 되는 편이다.
그렇지만 결국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게, 치밀하면서도 호탕하게,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처세할 것'이
이 책을 요약한 말이 되겠으며 더 간단히 줄이자면 '사람의 악한 심리를 잘 이용'하라는 것이다.
다시금 책 읽기 전에 들었던 의문점으로 돌아가
마키아벨리와 한비자는 지금 시대에 다시 살아 숨쉴 수 있을까?
치열하고 각박한 경쟁환경 속에서 남보다 우위에 서지 않으면 뒤쳐지고 마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곱씹어 생각해 볼 부분이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소통의 리더십', '사회 공헌 기업 정신'이 강조되고
요즘 많이 나오는 육아 예능을 통해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모습이 더 각광받고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먼저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겸손과 배려가 주목받는 시기임을 생각하면
일사분란한 공권력을 안정된 국가의 본질로 생각하는 현 정부의 모습과 겹쳐지며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