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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버려라 - 마음을 그리는 만화가 마르스의 문자그림일기
마르스 지음 / 노란잠수함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일기 쓰기를 언제 그만 두었던가?'
나도 분명 일기를 썼었다. 일기장을 펴면 그날 일어났던 일들이 떠올랐고, 그 일들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떠올랐고, 그것을 꼼꼼하게, 혹은 거칠게 끄적였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 일기장을 펴면, 성장한 지금의 나와 어린 나와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도무지 일기 쓰기를 언제 그만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공책에 쓰던 일기를 컴퓨터에 쓰면서 그 기억이 흐릿해졌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려, 혹은 다른 기계 이상으로 하드를 몇 번씩 날리면서 그 존재를 잊어갔나? 혹은 바쁜 일상에 쫓겨 일기 따위에 더 이상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사실, 마르스의 '상처는 버려라'는 사물에 문자를 넣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잼있어 보기 시작했다. 사물들이 담고 있는 말들, 의미들. 그것은 처음보는 잼나는 문자그림이였다. 사물에 담겨있는 촌철살인 같은 문자와 그림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퍽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책을 읽어가면서 이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에 점차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여백이 많아서 몇 줄의 글이 더 크게 울리듯 했던 걸까? 아니면 작가의 진솔한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현란한 수사도 없고, 관념적인 단어도 없는 짧은 문장들은 마치 요란한 화장을 지우고 거치장스러운 외출복을 벚어놓은 문장들을 연상시킨다. 그 문장들은, 화려하게 치장해 놓은 우리 자신의 남루한 삶의 내면을 가리키고 있고, 그것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삶과 마주하게 된다.
'삶!'
흔들리는 만원 버스에서 혹은 재래시장 뒷골목에서, 식당 아줌마의 거칠고 상처난 손에서, 축 쳐진 어깨를 한 아이들의 어깨에서, 친구와 이별하면서, 늘어나는 눈가의 주름 등에서 우리는 삶을 본다. 삶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는 바쁘다는 핑게로 혹은 너무 거대한 그 무게 때문에 그것을 간과하고 외면한다.
세월에 떠밀리는 데로 살다가, 아,아 이게 아닌데 싶은데도 어쩔 수 없어 체념해 버리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에게 마르스는 삶과 만나면 어떻게하면 되는지 보여준다.
자신의 삶과 대면하다보면 나도 마르스처럼 어떤 깨달음의 날들이 오지 않을까?
'어릴적 좋아하던 장난감을 잃어버려 몇 날 며칠을 울면서 찾아다닌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 장난감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이사를 가는 날이었다.
안방 장롱을 들어내던 순간 한쪽 구석에서 그토록 찾던 그 장난감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한때 좋아하던 사람의 기억에서 내 존재가 잊히는 것보다는 장난감처럼 다시 찾을 수 있는 잃어버린 무엇으로 남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