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혼 이야기 세트 - 전2권
갠(Gan) 글.그림 / 생각의나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자유분방하고 현란한 그림들이 눈에 띄어 책장을 열면  

갑자기 그림들이  인사하며 춤을 춰댄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 독자는 얼떨떨해 하며 그 생기발랄함에 깊숙히 빠져들어가리라.  

나도 그러하였으니까.   

그림과 글이 이토록 절묘하게 만난 것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는가? 

'마리혼 이야기'는 그것들이 서로 녹아들며  폭발적인 힘을 뿜어낸다.  

현란한 색채와 상상력 자극하는 이미지,  맛갈스러운 단어들, 걸러내지 않아 더 가슴에 와 닿는 감성들.  

'소나기 개고 햇빛 쨍쨍할 때 길 복판에서 두 여자의 작렬 싸움을  구경했어요. 1번 선수가 분을 못참아 칸나꽃 화분을 던졌죠. 휙 날아가 보도에 퍽 깨지는 소리가 어찌나 상쾌한지 박수칠 뻔 했네요. 여름이 왔다 이거죠. 팔월 복판인 거죠. 아싸.' -여름 여자들 신났어!'  

이렇게 가볍고 신나는 작가의 시선은

'몇 존재가 의식 안팎에 시간처럼 서 있다. 가까이 오렴. 내가 팔을 네 어깨를 만질 수 있는 거리 안으로.' -'존재의 그윽함'

처럼 삶의 내밀한 속을 더듬는 시선으로 변화무쌍하다.   

하긴 온갖 생명체들이 사는 마을이 '마리혼'이라고 하니 그 안에도 수많은 감성들이 살아 숨쉬겠지.  

갠에 이끌려 마리혼에 놀러가 정신없이 놀다보니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감성들도 떠올라진다. 내  감성은 어디로 간거지?  

고마워요 갠! 집 나간 제 감성을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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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버려라 - 마음을 그리는 만화가 마르스의 문자그림일기
마르스 지음 / 노란잠수함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일기 쓰기를 언제 그만 두었던가?'   

나도 분명 일기를 썼었다.  일기장을 펴면 그날 일어났던 일들이 떠올랐고, 그 일들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떠올랐고, 그것을 꼼꼼하게, 혹은 거칠게 끄적였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 일기장을 펴면, 성장한 지금의 나와 어린 나와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도무지 일기 쓰기를 언제 그만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공책에 쓰던 일기를 컴퓨터에 쓰면서 그 기억이 흐릿해졌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려, 혹은 다른 기계 이상으로 하드를 몇 번씩 날리면서 그 존재를 잊어갔나?  혹은 바쁜 일상에 쫓겨 일기 따위에 더 이상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사실, 마르스의 '상처는 버려라'는 사물에 문자를 넣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잼있어  보기 시작했다. 사물들이 담고 있는 말들, 의미들. 그것은 처음보는 잼나는 문자그림이였다. 사물에 담겨있는 촌철살인 같은 문자와 그림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퍽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책을 읽어가면서 이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에 점차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여백이 많아서 몇 줄의 글이 더 크게 울리듯 했던 걸까? 아니면 작가의 진솔한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현란한 수사도 없고, 관념적인 단어도 없는 짧은 문장들은 마치 요란한 화장을 지우고 거치장스러운 외출복을 벚어놓은 문장들을 연상시킨다. 그 문장들은, 화려하게 치장해 놓은 우리 자신의 남루한 삶의 내면을 가리키고 있고, 그것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삶과 마주하게 된다.    

'삶!' 

흔들리는 만원 버스에서 혹은 재래시장 뒷골목에서, 식당 아줌마의 거칠고 상처난 손에서, 축 쳐진 어깨를 한 아이들의 어깨에서, 친구와 이별하면서, 늘어나는 눈가의 주름 등에서 우리는 삶을 본다. 삶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는 바쁘다는 핑게로 혹은 너무 거대한 그 무게 때문에 그것을 간과하고 외면한다.  

세월에 떠밀리는 데로 살다가, 아,아 이게 아닌데 싶은데도 어쩔 수 없어 체념해 버리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에게 마르스는 삶과 만나면 어떻게하면 되는지 보여준다.

자신의 삶과 대면하다보면 나도 마르스처럼 어떤 깨달음의 날들이 오지 않을까?  

'어릴적 좋아하던 장난감을 잃어버려 몇 날 며칠을 울면서 찾아다닌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 장난감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이사를 가는 날이었다.  

안방 장롱을 들어내던 순간 한쪽 구석에서 그토록 찾던 그 장난감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한때 좋아하던 사람의 기억에서 내 존재가 잊히는 것보다는 장난감처럼 다시 찾을 수 있는 잃어버린 무엇으로 남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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