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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 2024년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도토리숲 문고 9
존 조 지음, 오승민 그림, 김선희 옮김 / 도토리숲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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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1992년 LA 폭동이 일어났던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가 존 조(John Cho)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힘이 들었던 조던은 한달 전쯤 아버지와의 큰 다툼으로 괴로워하던 중이었다. 학교에서는 커닝으로 정학을 맞았고, 집에서는 아버지와의 문제로 숨을 쉬기 힘든 그 때, 미국은 로드니 킹과 두순자 사건으로 흑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그 분노는 한인들에게 향한다. 한인타운 근처에서 주류판매업을 하는 아버지는 만약을 대비하여 홀로 가게로 향하고, 집에 남은 가족들은 아버지가 무사히 귀가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던은 아버지가 자신과 가족, 가게를 지키기 위해 준비해뒀던 총을 집에 두고 갔다는 것을 떠올리고 아버지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총을 아버지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가족들 몰래 집에서 나온다. 아버지가 달가워하지 않는 친구 마이크, 누구보다 친하고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 부담스러운 누나 사라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가게에 도착한 조던. 그리고 마주한 아버지의 진심과 조던의 진심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나는 BLM 에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분노는 언제나 더 약하고 소수인 아시안에게 닿을 때가 많았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때문이다.

물론 이 책을 보면서 무조건 마음이 누그러졌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것을 보호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한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 어쩌면 그게 진짜 보호다. p. 247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인종도 우월을 가릴 수 없고, 어떤 존재도 하찮은 존재는 없다.

세상은 많은 이유들로 이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 쉽게 외면하고 산다. 그렇게 생겨난 슬픔과 분노, 상처는 결국 우리 모두를 향해 삶을, 세상을 위협한다.


***


사실 LA 폭동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속 '인종'에 대한 키워드만큼이나 '이민자'의 삶에 눈길이 갔다.

내 나라가 아닌 타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된 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꿈꿨던 꿈과 희망 만큼이나 실망과 고통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거다. 특히 이민 1/2세대들의 경우는 먹고, 사는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그 곳에 도착하여 열심히만 산다면 '미국인'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지만 쉽게 주류의 삶이 되기 힘들고,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수많은 고민 속에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조던의 아버지에게서 우리는 엿들을 수 있었다.


"아빠가 말한 대로, 우리는 너희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왔어. 하지만 우리 정말로 잘하고 있는 걸까? (중략) 내가 너한테 심하게 대한 건... 그건 우리가 선택한 이곳이 최선이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야. 우리가 이겨 내면 넌 여기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 p 236



아버지에게 가기까지의 짧지만 긴 하루의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보여주어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지만, 읽는 사이사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 문제아.

"난 내가 누구인지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라는 조던의 말이 길게 여운으로 남는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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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 인생의 파도를 대하는 마흔의 유연한 시선
제인 수 지음, 임정아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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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되는 내가 이 책의 서평단을 신청하고 책을 받기 직전까지만 해도 나보다 몇 년 더 산 언니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거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꽤 설레여 있었다.

그런데 첫장부터 그런 내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아줌마니까 라는 프리패스권이 생긴다는 첫장의 이야기부터 동의하고 싶지도, 동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줌마니까 몰라도 되고, 아줌마니까 라는 말로 모든 것에 거침없을 수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전형적인 아줌마라는 단어에 대한 편견 아닌가?

첫 이야기부터 김이 샌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니 이 책을 다 읽고 서평까지 완료할 수 있을지 순간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다시 첫장을 읽으니 왜 나 그런 생각을 했던거야?’ 하고 나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의 결론은 나는 여태 내가 아줌마의 반열에 오른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몸도 마음도 20대 같은데, 아줌마라니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인지, 나보다 고작 대여섯살 많을 작가가 왜 이렇게 나이든 사람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조차 소녀와 노인 사이의 여자를 이해하지도 인지하지도 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첫장부터 김은 새지만 그래도 모를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읽어 내려갔다. 글은 쉽고 편안했다. 여러 종류의 스토리들은 내 이야기 같기도 했고, 내 언니의 이야기 같기도 했으며, 또 때론 내 엄마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일본 문화의 어색함이 조금 있긴 했지만, 큰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각 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내 옆에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동네 옆집 언니랑 수다 떠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맞아 맞아!’를 연발하고 상처 입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 스트레스가 뻥 뚫리는 느낌. 특별히 대단하지 않은 보통 사람의 그 중에서도 여기에서 치이고 저기에서 치이기 딱 좋은 현재의 세상에 사는 여자’ ‘40’ ‘중년혹은 아줌마의 삶을 따뜻한 시선과 뜨거운 마음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생각하던 40대의 모습을 나는 가지기 힘들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좋다. 지금 나, , 우리 모두 잘 살아가고 있고, 지금 이대로 충분히 좋다.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작가, 제인 수의 이야기들이 정말 큰 위로가 되고, 조금은 겁먹고 있던 내 40대가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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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청춘
정해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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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청춘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자신의 삶이 억울한 65세 대기업 회장과 기깔나게 살아보지 못해 억울한 18세 고등학생이 있다. 억울함의 무게가 엄청났던 것일까, 죽는 순간 두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고 100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책 소개부터 드라마 한 편을 눈으로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던 정해연 장편소설 백일청춘’. 장르물 특히 영혼체인지’, ‘시간여행등의 현실에서 있는 (아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르의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설레였다. 안 읽어봐도 이미 재미있을 것 같은 이 기분! 그리고 또 걱정되기도 했다. 유치하거나 뻔한 스토리일까봐.

읽기 전부터 재미있을거라는 확신처럼 글은 술술 읽히고 다음장이 다음 페이지가 너무 궁금해서 책을 손에 놓을 수 없었다. 물론 뻔한 전개인 부분도 있었다. 석호의 회사 이야기라던지 가족관의 관계 등은 드라마 좀 봤다~ 하는 사람으로서는 뻔한 부분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작가의 메시지가, 잊지 말아야 할 인생의 철학이 마음에 콕콕 박혀왔다.

  누구나 제 삶을 돌아보면 후회없는 부분이 없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살겠냐 묻는다면 더 열심히 살아볼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놀아보고, 더 열심히.. 더 열심히...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정말 다시 살게 되도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 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더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후회하던 그 순간은 사실 최선을 다한 선택이고, 노력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욕심 부리지 말자. 후회하지 말자. 단지 내 눈앞의 내 삶을 누리자. 눈앞에 놓인 과제를 열심히 풀고, 그리고 내 삶을 내가 응원하자. 그렇게 살다보면 죽음을 앞에 둔 어느 순간 후회보다는 잘 살아왔구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게 맞는지, 죽음을 눈앞에 두니 먼 옛날 흘려보낸 시간에 대한 후회가 밀물처럼 쏟아졌다. 왜 그때는 더 누리지 못했을까? 왜 더 행복하지 못했을까? - P31

무조건 놀기만 하는 게 청춘인 건 아니었다. 닥친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석호의 청춘이었다. - P306

최선을 다해서 살아내는 삶이 청춘이라고 했던가. (중략) 최선을 다해 살아낸 삶은 반짝이는 청춘으로 남을 것이다. - P312

석호는 말했다. 자신은 매 순간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유식도 석호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매 순간 자신의 앞에 놓인 일들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그러다 만약 꿈이 생긴다면 그때 그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 것이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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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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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죽음을 곁에 두고.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래전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문득문득 느끼며 살고 있다. 나이가 더 어렸던 20대에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 추락하면 어쩌지, 테러범에 의해 총에 맞으면 어쩌지 하는 식의 다소 허무맹랑하지만 지극히 가능한 두려움에 떨었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언젠가는 일어날 부모님의 죽음, 친한 친구 혹은 배우자의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고는 한다.

나는 학교에서 노인들에 대한 연구를 한다. 노인들의 건강에 대해 주로 연구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노인이라는 단어에 죽음을 함께 연관지어 생각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주변 정리 (예를 들어 유언장 등)를 함으로써 죽음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과연 죽음과 밀접한 단어가 과연 노인일까. 그리고 과연 죽음을 준비한다고 죽을 준비가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죽음은 누구에게 먼저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죽음을 대비한다고 해서 죽음에 초연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의 작가는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성상세포종 3기 판정을 받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작가는 평생을 해 오던 습관처럼 자신의 남은 생에 대해 단편적인 사색의 글을 써 내려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니 하고 싶은 것이라고는 평생을 해 왔던 글쓰기를 계속해서 해 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 글속에서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삶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담담하고 선명하게 써내려갔다.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또한 그의 생각이 모두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죽게 될 우리 모두에게 이 글을 통해 각자가 추구하는 삶에 대해 한번 더 점검하고, 죽음이 당장 내 눈앞에 놓인다 하더라도 조금은 덜 후회하고 덜 두려워할 수 있는 진정한 준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 9

살면서 어떤 순간이든 모든 것이 무너지거나 순간적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것과 그 일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일이었다.

 

p. 15

이른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p. 16

나는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 살아낸 후에는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려 한다. 내 인생이 빨리 끝났는지 아닌지는 길고 풍요로운 삶이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라는 나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p. 17

한 사람의 수명은 삶의 경험을 잴 수 있는 기능적인 혹은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p. 34

시간은 쓰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무언가에 소비했을 때만 중요하다. 시간이든 돈이든 쓰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개념일 뿐이다.

p. 35

우리는 시간 안에서 태어났고 시간 속으로 던져졌다.

 

p. 39

만약 어떤 사람이 낭비한 시간을 즐겼거나 소중하게 느꼈다면 이 사람이 시간을 정말 낭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p. 43

인간은 각각의 내면에 있는 누구도 이해 못하는 나만의 의미 지표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향해 성장하고 움직일 때, 가장 큰 짜릿함과 활력을 느끼도록 설정되었다.

 

p. 72

외로움의 원인이 물리적인 거리에 있지 않은 건 명백하다. 그보다는 내가 몸담고 있는 세상, 그 안에서 나 자신과 교감하는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p. 75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희망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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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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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박솔뫼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다. 내가 처음 박솔뫼라는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어느 서점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에서였다. 여러 작가들이 쓴 책의 문구들 중에 하나를 골라 책갈피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었고 내 마음에 든 문구는 바로 아래의 문장이었다.

 

여전히 나는 가볍고 바람이 통과하고 흔들거리고 텅 비어 있고, 질문들은 빈 공간을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 그럼 무얼 부르지

 

처음 들어본 어느 작가의 문장이 내내 마음에 들어와 책갈피를 만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날 때 박솔뫼 작가의 책은 꼭 읽어봐야지. 라는 결심과 함께.

그리고 드디어 박솔뫼 작가의 새 책이 나왔고 서평단 신청을 거쳐 지난 연휴에 읽어볼 수 있었다.

 

박솔뫼 작가의 다른 책들은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다 같은 작법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아마도) 박솔뫼 작가의 책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이유는 긴 호흡으로 이루어진 문장의 길이 때문이었다. 특히, 박솔뫼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 사람들은 (나처럼) 당황하지 않을까 싶다.

첫 문단을 읽다가 순간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어 찬찬히 한 단어 한 단어를 다시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생각한 것은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였다. 만약 나 같이 글쓰기 초보들이었다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죠?’ 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을텐데, 한 단어 한 단어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내려가며 이해가되지 않는 문장이 없었다. 심지어 이후에는 리듬감이랄까, 박자를 맞추듯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도 다, 이해가 갔다.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긴 호흡의 문장은 마치 (쉽게 말하자면) ‘누군가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 가는 것 같았다. 내가 그 누군가의 머리가 되고 눈이 되고, 한 몸이 되어 그가 서 있는 곳을 온 마음으로 함께 따라가고 있는 기분. 아마 작가는 그런 이유로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니었을까. 호불호가 있을 작법일지라도 한 번 빠져든 독자들은 절대 박솔뫼 작가의 책을 놓치지 않겠구나,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사람들은 모두 달랐고 그래서 같았으며, 반대로 모두 같았으며 또 모두 달랐다. 각각의 다른 인물들이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지만 같은 모습이어서 익숙했고 한 편으로 낯설었다. 그 느낌이 생경하여 인물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보기도 하였다. 이는 읽어본 사람만이, 인물들의 머릿속을 헤매여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박솔뫼 작가의 책이 처음인 사람들은 긴 호흡의 첫 문장, 첫 문단에 포기하지 말고 천천히 한편만이라도 읽어내려가보길 바란다. 분명, 본인도 모르게 빠져들고 내가 책 속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가끔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저를 위해 무언가를 한순간 포기해주십시오. 저의 고민을 떠안아주십시오. 나 역시 아주 가끔 누군가의 불덩어리를 삼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곧 사라지는 생각이다. - P76

그런 말들이 있지 않은가. 여러번 넘어질수록 자전거를 빨리 배우고 여러번 넘어질수록 단단해지고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그렇다면 왜 이기려는 것일까. (중략) 안 넘어져도 자전거를 배울 수 있다. 그것이 내가 그때 확실히 느낀 것이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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